[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⑭청동기시대 누드 농사꾼
입력 2010-05-09 17:31
한반도에 쌀농사가 시작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요. 고대 농경사회를 보여주는 유물이 별로 없어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청동기시대부터 벼농사를 지었다는 게 고고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구석기시대에는 수렵과 채취로 떠돌이 생활을 했고, 신석기시대에는 농사를 지으며 곡식이나 음식을 담을 토기를 만들었고, 벼와 같은 고급 곡식은 청동기시대에 생산했다는 겁니다.
쌀의 화석인 탄화미(炭化米)에 대한 탄소연대 측정 결과도 청동기시대의 벼농사를 추정케 하지만 1969년 대전에서 수집한 ‘농경문청동기’(農耕文靑銅器·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만큼 이 시대의 농경문화를 드러내는 문화재도 드물겁니다. 처음에는 이 유물 모양이 방패 같기도 하고 무슨 지붕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해서 ‘방패형동기’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조유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전합니다.
길이 7.3㎝, 너비 12.8㎝, 두께 1.5㎝인 이 유물은 아래쪽 일부가 떨어져 없어지고 윗 부분에 6개의 구멍이 뚫려있는 모습입니다. 앞면과 뒷면에 사람과 동물이 새겨져 있는데 새가 그려진 앞면의 그림은 일종의 솟대를 상징한 것처럼 보이고 뒷면은 추수하고 농사짓는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유물은 ‘삼국지 동이전’ 기록에서 보듯이 청동기시대 추수 때 사용된 의기(儀器)랍니다.
뒷면 오른쪽에는 사람이 두 손으로 따비(발판을 밟아 삽질을 하듯 손잡이를 뒤로 눌러 떠엎거나 손잡이를 옆으로 비틀어서 땅을 일구는 농기구)를 잡은 채 한쪽 발로 밟고 있으며 그 밑에는 밭고랑으로 보이는 가는 선을 그어놓았지요. 처음에는 괭이처럼 생긴 농기구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지만 1997년 광주에서 발굴된 똑같이 생긴 농기구가 따비라는 사실이 확인됐지요.
밭갈이를 하는 사람은 두 다리 사이에 남근이 삼각형으로 표현돼 있어 남자임을 알 수 있죠. 그렇다면 농사를 짓는 청동기시대의 이 남자는 왜 옷을 벗고 있을까요. 더운 날씨 때문에 옷을 벗었다는 주장도 있고, 당시 의복생활이 여의치 않아 벗고 지내는 게 일반적이었다는 이론도 있지만 바깥 기온이 농사 짓기에 알맞은지 몸으로 측정한 관습의 발로라는 학설이 유력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7월 4일까지 열리는 특별전 ‘청동기시대 마을풍경’에 농경문청동기가 출품됐습니다. 청동기시대 마을에는 주거지뿐 아니라 무덤과 논밭, 광장, 망루, 습기를 막으려고 바닥을 높인 고상창고(高床倉庫), 저장구덩이, 의례공간 등 공동생활에 필요한 여러 시설이 함께 있었으며 마을을 이끄는 지배자도 있었다고 합니다.
전시에는 나무도끼자루와 절구공이 등 농기구, 시루 등 가공·조리기구, 동검(銅劍)과 석검(石劍) 등 무기류, 붉은간토기와 가지무늬토기 등 그릇류, 장례 모습이 담긴 암각화 등 청동기시대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료가 선보입니다. 박물관을 찾는다면 유물들의 역사와 의미를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문화재는 아는 만큼 보인답니다.
문화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