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36년만의 ‘헝 의회’… 보수-노동, 자민에 연정 구애
입력 2010-05-08 01:36
‘밤새 일어난 놀라운 결과에 모두가 불만이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7일 총선 결과를 보도하면서 이런 헤드라인을 달았다. 전날 치러진 총선에서 야당인 보수당이 제1당으로 올라서긴 했지만 과반수에는 크게 못 미쳤다.
영국에서 어느 정당도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해 공중에 매달렸다는 의미의 ‘헝 의회(Hung Parliament)’라는 결과가 나온 것은 36년 만이다. 재정 위기에 빠진 영국이 개혁 조치를 위해 강력한 리더십을 필요로 하는 시점이어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보수당이 의회 과반을 넘어서는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선 제3당인 자유민주당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수는 “자민당에 포괄적인 협력을 제안한다”며 연정을 강하게 제안했다. 캐머런은 선거 승리 연설의 상당시간을 할애해 자민당을 설득했다. 그는 “경제 상황이 불안하고 이라크 전쟁을 치르고 있는 영국에는 강하고 안정적인 정부가 필요하다”며 “자민당이 제시한 교육 개혁과 세제 개혁에 보수당도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의 최우선 과제는 재정적자 해결이다. 영국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2%로 유럽연합 회원국 중 가장 높다. 3월의 재정적자 규모는 235억 파운드로 1993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를 기록했다. 런던 아버스넷 뱅킹그룹의 루스 리어 애널리스트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재정적자 문제가 폭발 직전의 시한폭탄이라고 지적하면서 “새 정부가 고삐를 확실히 쥐지 못할 경우 국제통화기금(IMF)이 개입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수당은 선거운동 기간에 노동당 정권의 재정적자 문제를 집중 공격하면서 보건과 교육 예산을 제외하고는 예산을 대폭 감축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캐머런이 선거운동 과정에서 불법 이민자들의 보건·교육비 부담이 재정적자의 원인이라고 공격한 것처럼 복지 예산을 손대지 않고는 재정적자 탈출을 기대하기 어렵다.
캐머런은 또 모든 정치세력이 참여하는 선거법 개정 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선거법 개정은 자민당이 강하게 요구해온 사항이다. 캐머런은 “모든 유권자의 표가 같은 가치를 가져야 한다”며 “선거운동 과정에서 선거법 개정 의사를 밝힌 모든 정당과 대화하겠다”고 밝혔다. BBC방송은 국민투표를 통해 선거법을 개정하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집권 노동당 고든 브라운 총리는 이날 새벽 총리 관저로 돌아가면서 “강하고 안정된 영국을 만드는 일을 계속할 것”이라며 집권 연장에 대한 미련을 드러냈다. 그도 역시 “정치개혁 입법에 즉시 착수할 수 있다”며 닉 클레그 자민당 당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노동당은 내심 재선거를 바라고 있다. 자민당과 손잡고 선거법을 개정해 새로운 선거를 치르겠다는 것이다. 토니 벤 전 노동당 의원은 “몇 달 내 재선거를 치를 수도 있다”고 BBC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클레그 당수는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됐다. 선거 초반 TV토론을 통해 돌풍을 일으키며 한때 여론조사 지지율 1위까지 올랐던 자민당은 오히려 의석이 줄어든 결과에 실망했지만, 양당의 연정 제안으로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자민당은 노동당의 분파 성격이 강하지만, 노동당과 손을 잡아도 과반수에는 못 미친다. 자민당 관계자는 “보수당의 제안은 흥미롭다”며 “고려해 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