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사 꿈꾸던 명문대 출신 청년 박승필씨의 ‘효도’

입력 2010-05-07 18:33


양복점 40년 아버지의 가업을 잇다

서울 답십리동에서 양복점 ‘엘부림’을 운영하는 박수양(59)씨는 7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 일찍 가게에 도착했다. 말쑥한 정장 차림의 한 젊은이가 그의 곁에 서 있었다. 박씨의 아들 승필(25)씨다. 아버지와 함께 매장 문을 열고 닫으며 양복을 만든 지 벌써 3년이 넘었다.

원래 승필씨의 꿈은 영어 교사였다. 어린 시절부터 영어에 재능을 보인 승필씨는 연세대 영문과에 진학했다. 교사 임용고시 준비를 하면서 자신의 꿈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는 여느 젊은이와 다를 바 없는 학창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대학교 3학년이 끝날 무렵 아버지의 양복점이 급격히 어려워지면서 승필씨는 고민에 빠졌다. 아버지가 40년 가까이 일궈온 사업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만 있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팠다. 아버지 박씨는 젊은 시절 각종 양복기능 대회에서 상을 휩쓸며 이름을 날렸지만 양복점이 사라져가는 시대의 변화를 거스르지 못하고 위기를 겪고 있었다.

승필씨는 “아버지의 양복점은 나의 놀이터였고, 독서실이자 집이었다”고 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양복을 만들고 있으면 승필씨는 양복점 소파에서 잠을 자거나 공부도 했다. 추억이 깊게 배인 곳이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승필씨의 안타까움과 아쉬움은 너무나 컸다.

그는 처음에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얼른 대학을 졸업하고 영어 교사가 되는 것만이 효도라고 여겼다.

그런데 중 우연히 접한 TV프로그램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몇 대째 가업을 잇는 일본 젊은이들의 이야기였다. 같은 자리에서 아버지가 만들던 것과 똑같은 맛의 우동을 만들고, 똑같은 옷을 만들어 팔며 행복해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그는 감명을 받았다. 결국 자신의 꿈을 제쳐두고 가업을 잇기로 결심했다. 승필씨는 “아버지 인생의 전부인 양복사업에 내 인생도 걸었다”고 말했다.

박씨가 마음을 정하고 양복점 운영에 뛰어들자 변화가 일어났다. 부자간 대화가 많아졌다. 오전 9시 출근해서 오후 9시 퇴근할 때까지 끊임없이 대화했다. 일 얘기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얘기도 친구처럼 털어놨다. 또래 친구들은 아버지와 집에 있어도 얘기하는 적이 없다지만 이들은 달랐다. 아버지와 친해질수록 일은 더 잘 풀리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뛰어난 기술력과 아들의 젊은 감각이 시너지 효과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승필씨가 양복점 운영에 뛰어든 2007년 3월 이후 무려 2000여명의 고객이 매장을 다녀갔다. 이전 3년간 500명에 불과하던 고객이 4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젊은층을 겨냥한 감각의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는 것이 고객들의 공통된 목소리였다고 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에게 공을 넘겼다. 아버지 박씨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아들 덕분에 모든 것을 이겨냈다. 너무나 든든하다”며 흐뭇해했다. 승필씨는 “아버지가 뿌린 씨를 제가 거둘 테니 걱정마세요”라며 아버지를 꼭 껴안았다.

글·사진=조국현 노석조 기자 jo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