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방중 이후] 韓·美·中 수싸움 본격화… 20일쯤 천안함 발표 분수령
입력 2010-05-07 22:12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6일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6자회담 재개를 언급함으로써 관련국들의 본격적인 수 싸움이 시작됐다. 일단 한·미는 천안함 사태를 매듭짓는 데 먼저 역점을 두고 북·중은 6자회담 재개를 만지작거리는 모양새다. 한·미 대(對) 북·중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있고, 미국과 중국의 의미 있는 ‘대화와 견제’가 예상된다.
◇북·중의 의도=김 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통해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유리한 조건 조성’을 언급한 것은 복잡한 의미가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예비회담이나, 또는 미국 측에 다른 요구조건을 내건 게 아직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북·중이 9·19공동성명 합의에 근거해 한반도 비핵화 목표 실현을 위해 노력한다’라는 표현은 나름대로 성의를 표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미국은 6자회담 복귀와 9·19성명 내용에 부합된 조치 이행이 있어야만 북한과 의미 있는 대화의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줄곧 강조해 온 터였다. 북·중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도 강조,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핵 없는 세상’ 정책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뉘앙스도 풍겼다.
하지만 구체적인 결과물을 밝히지 않고 있어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위해 의미 있는 조치들을 취할지는 불투명하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좀 더 결과가 나와 봐야겠지만 한·미가 그동안 요구했던 사항들을 북한이 단박에 취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예상했다.
다만 6자회담 카드를 던짐으로써 천안함 사태를 희석하고, 특히 6자회담을 레버리지로 한·미의 천안함 공조 약화를 노리는 것일 수도 있다. 또 비핵화를 위한 회담 재개를 계속 강조함으로써 공을 상대방 코트에 넘기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의 대응 기조=미국은 이날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 발언과 국무부 브리핑을 통해 ‘천안함 침몰 원인 규명 후 6자회담 재개 판단’ 입장을 명확히 했다. 특히 필립 크롤리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는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밝히면 미국은 응하는가’라는 질문에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비가역적 조치, 국제법 준수, 호전적 행위 중지, 이웃 국가와의 관계개선 조치를 취하는지 지켜보고 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또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며, 북한이 해야 할 매우 분명한 것들이 있다”고 말했다. 회담 재개에 대해 전제조건을 내건 것이다.
미국 입장은 천안함 침몰이 사실상 북한 소행이라는 전제를 짙게 깔고 있다. ‘호전적 행위(belligerent behavior)’ 같은 표현은 지금까지의 어떤 표현보다 그런 분위기다. 그러면서 북한이 반성(국제법 준수)하고, 재발방지책(이웃 국가와의 관계개선책)을 내놓으라는 요구를 한 것이다. 크롤리 차관보가 “중국 측이 북한이 국제적 의무를 준수하고, 역내를 불안정하게 하는 호전적 행위를 중지해야 한다는 점을 강력히 전했기를 바란다”고 언급한 게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천안함 사건과 6자회담 논란 과정에서 주목되는 것은 G2(미·중)의 대화와 견제다. 양국이 경제 문제 등에서 여러 가지로 부딪히지만 동북아 안보 이슈에서는 일정 부분 공감대가 있다. 이 공감대를 확대해 나가는 과정에서 양국의 전략적 대화와 밀고 당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의 외교 역량이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20일쯤으로 예상되는 천안함 침몰 원인 조사 결과 발표 이후 6자회담 재개는 확실한 방향성이 정해질 것으로 분석된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