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태형] 나우웬의 벤치
입력 2010-05-07 17:51
캐나다 토론토에 가면 꼭 방문하고 싶은 곳이 있었다. 나이애가라 폭포가 아니다. ‘상처입은 치유자’의 저자 헨리 나우웬이 봉사했던 장애인 공동체 데이브레이크(Daybreak)다.
네덜란드 태생의 사제인 나우웬은 어린시절부터 천재로 소문났던 인물. 심리학과 신학을 공부한 후 노트르담대학과 예일대학, 하버드대학 등에서 가르쳤다. 학자로서, 작가로서 최고의 삶을 살았던 그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언제나 자신의 풍요에 대한 죄책감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강력한 내면적 추구가 있었다. 1981년 그는 강단을 떠나 페루 빈민가에서 민중들과 함께 지냈다. 미국으로 돌아와 하버드대에서 강의를 했지만 영혼의 안식을 누리지 못했다.
나우웬은 대중들에게 선언했다. “다 내려놓겠습니다. 새로운 인생길을 찾아 나서겠습니다. 데이브레이크의 정박아 시설에서 봉사의 삶을 살겠습니다.” 모두가 그의 결정을 만류했다. 세계적 석학이 몇 십 명의 장애우들과 생을 보낸다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낭비라고 설득했다.
그러나 나우웬은 “그동안 오르막길만 올라갔습니다. 이제는 내리막 인생길을 걷고 싶어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내 영혼의 선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까이 하고 싶어서입니다.”
나우웬은 선언한 대로 데이브레이크에 들어가 장애우들과 함께 생활했다. 그리고 96년 9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장애우들의 친구로 살았다.
데이브레이크에서 정말 조그맣고 초라한 벤치를 발견했다. 나우웬이 즐겨 앉았던 벤치였다. 그 곳에 앉아서 데이브레이크의 전경을 보았다. 적막한 느낌까지 드는 작은 공동체였다. 나는 그 벤치를 ‘나우웬의 벤치’라고 이름 붙였다. 그 초라한 벤치는 나우웬이 하나님과 만나는 비밀의 장소였을지 모른다.
세상적으로도 나우웬은 현명한 결정을 했다. 하버드대학에 그대로 있었다면 내가 토론토에 가서 나이애가라 폭포보다 더 그의 흔적을 찾고 싶어 했을 리 없었을 것이다. 작디작은 공동체, 세상이 눈길조차 주지 않은 그곳에서 그는 살았다. 오직 주님께 발견되기 위해서.
나우웬의 벤치에서 생각해 보았다. ‘아,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는가. 내 영혼의 선장은 지금 나를 주목하고 계시는가.’
이태형 선임기자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