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어머니”

입력 2010-05-07 17:45


‘천국에서 온 편지’/최인호/누보

“어머니. 당신은 죽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어머니의 이름으로 내 가슴에 영원히 살아 있고 이 지상에 영원히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제일 먼저 배운 말 한마디가 ‘엄마’이었듯 어머니가 가르친 말, 어머니가 가르친 노래들은 내 가슴에 마르지 않는 샘이 되어 흘러내리고 있습니다.”(226쪽)

소설가 최인호(65)씨가 20여년 전 세상을 뜬 어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에세이집 ‘천국에서 온 편지’(누보)를 펴냈다. 각종 지면에 발표했던 글들을 모은 것으로 어머니를 향한 애틋한 그리움이 갈피마다 절절하게 배어 있다.

최인호는 작가로서 인기 절정을 누리던 마흔 둘에 어머니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냈다. 어머니는 마흔여덟에 남편을 잃고 아들 셋, 딸 셋을 키운 억척스러운 여인이었다. 이웃과 악다구니를 하고, 아버지의 묘소에서 주위의 시선도 아랑곳 하지 않고 목을 놓아 통곡하고, 칙칙한 쥐색 두루마기를 입고 학교로 찾아오던 그런 어머니였다. 어린 시절 작가는 그런 ‘촌뜨기 엄마’가 내심 부끄러웠다.

그러나 어머니가 세상을 뜬 후에야 어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작가는 “어머니의 사랑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는 데는 거의 30년이 걸렸다”고 자책한다.

대학 시절 술에 취해 들어와 딸꾹질을 하는 작가를 보고는 “술이 뭐에 그리 좋다고, 무슨 술을 그렇게 밤마다 처마시고 있느냐, 이 웬수야!”라며 설탕물이 담긴 밥그릇을 건네 주던 어머니, 마흔이 넘었을 때 벌써 거의 모든 이가 빠졌지만 형편이 어려워 틀니를 하지 못하고 몇 개 남은 이로 지내던 어머니, 홍시를 유난히도 좋아했던 어머니, 늦잠 자는 자식들이 학교에 늦을까 애태우며 깨우던 어머니…. 작가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어머니에 얽힌 추억들을 하나하나 풀어놓는다.

어머니가 떠나고 20여년이 흐른 뒤 작가는 어머니의 냄새를 이렇게 떠올린다. “치마에서 나는 김치 냄새와 음식 냄새, 당뇨환자들이 풍기는 달짝지근한 냄새 그리고 수고한 땀 냄새 등이 혼합되었던 일종의 고통의 냄새였다.”(126쪽) 작가는 그 냄새를 “가족들을 위해서 헌신하고 혼신의 힘을 다한 땀 냄새”였다고 말한다.

작가는 세월의 힘을 빌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삭인다.

“그리운 어머니, 이제는 어머니를 생각해도 별로 눈물이 나오지 않아요.…어머니를 이별했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원할 때 어머니를 언제나 만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에요.” 어머니와 함께 한 기억을 통해 어머니와 늘 함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담담하게 읊조린다. “언젠가 다시 만나겠지요. 그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나의 어머니.”(117쪽)

작가는 2년여 전 침샘암 수술을 받았다. 지난해 가을에는 월간 ‘샘터’에 35년 동안 이어오던 소설 ‘가족’의 연재를 402회로 마감한 채 투병중이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