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휴머니스트’ 영원히 기억되리… 마나슬루서 실종 윤치원씨 5월9∼11일 ‘유품 장례식’
입력 2010-05-06 21:20
‘영원한 산 사나이, 의리의 산악인….’
지난달 24일 히말라야 마나슬루 등반에 나섰다 실종된 대한산악연맹 산하 경남산악연맹 부회장 윤치원(40)씨가 극한의 상황에서도 끝까지 후배 산악인을 지키려다 함께 변을 당했다는 뒷얘기가 알려져 감동을 주고 있다.
윤씨와 함께 마나슬루를 등반했다가 손발에 동상을 입고 서울의 한 병원에 입원 중인 강연룡(37)씨는 6일 “당시 정상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곳에서 기상이 너무 나빠 등정을 접고 내려오던 중이었다”며 “윤씨가 탈진한 동료를 데리고 내려오다 동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강씨에 따르면 당시 일행 6명 중 3명은 먼저 하산하고, 강씨와 윤씨, 박행수(27·광주연맹소속)씨가 함께 있었다. 7900m 지점의 빙벽 구간 경사진 부분에서 윤씨는 강씨에게 “행수를 데려갈 테니 먼저 내려가라”고 말했다. 박행수씨는 체력이 떨어져 혼자 움직이기 힘든 상태였다. 이 말을 들은 강씨는 로프를 타고 경사면을 먼저 내려온 뒤 윤씨가 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는 하산했지만 두 사람은 돌아오지 못했다.
강씨는 “당시 기상은 영하 40도 이하의 혹한에 눈보라가 거세고, 눈이 많이 내려 눈 표면과 공간의 경계 구분이 어려운 ‘화이트 아웃’ 상태가 심했다”며 “두 사람이 추위를 피하기 위해 빙벽의 갈라진 틈인 크레바스에 들어갔다가 함께 동사한 것 같다”고 전했다.
산악인들 사이에 윤씨는 동료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줄 아는 ‘히말라야의 휴머니스트’로 통했다. 지난해 7월 10일 고(故) 고미영씨와 낭가파르밧 등정 후 함께 하산하던 중 고씨가 추락하는 것을 불과 2∼3m 앞에서 목격한 윤씨는 다음날 김재수(49) 원정대장과 함께 고씨의 시신을 어렵게 수습했다. 시신이 발견된 곳은 헬기가 착륙할 수 없고 접근하기 어려운 장소로 눈사태가 발생할 경우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4명의 대원과 로프를 설치해 시신을 수습했다. 윤씨는 고씨의 시신을 업고 먼 길을 하산해 ‘가장 인간적이고 의리 있는 산 사나이’란 평을 받았다.
윤씨는 또 2000년 7월 28일 프랑스 몽블랑 정상 인근에서 실종된 같은 진해산악회 소속 김중광씨를 찾는데도 사투를 벌였다. 당시 일주일간 혼자서 실종 지점을 중심으로 수색에 나섰으나 끝내 찾지 못했지만 동료의 주검을 찾기 위해 하루에 두 차례나 몽블랑을 오르내린 그의 행적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윤씨의 장례는 9∼11일 시신 없이 치러진다. 경남산악연맹은 그동안 수색에서 끝내 윤씨를 발견하지 못함에 따라 가족과 협의해 그의 고향인 경남 진해에서 진해산악회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아직 실종 상태여서 베이스캠프에 남아있던 윤씨의 등산복과 배낭, 침낭, 각종 등산용품 등의 유품이 시신을 대신한다. 경남산악연맹 조형규(62) 회장은 “윤씨의 살신성인과 희생정신에 경의를 표한다”며 “그는 의사(義死) 산악인으로서 후배 산악인들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윤봉학 기자 bhy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