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성혜영] 굴욕과 영광 사이

입력 2010-05-06 17:50


“축하합니다!”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다가는 이내 일본의 황금연휴에 연일 홈런을 쳐낸 김태균 선수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 차렸다. 일본어 선생님 쓰치야씨는 일주일에 한 번 만날 때마다 한국에 관련된 이야기로 인사를 건넨다.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가 금메달을 땄을 때도, 법정 스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그랬다. 그 축하나 위로의 인사를 내가 받을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대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전해져 마음이 따듯해지곤 한다.

딱히 애국자도 아니고 야구팬도 아니지만 일본에 살다 보니 요즈음 김태균 선수의 활약이 정말 신난다. ‘4연속 삼진아웃, 충격의 데뷔’라는 타이틀로 그의 혹독한 신고식을 소개하던 스포츠 면을 안타깝게 지켜 본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홈런이 나오고 ‘히어로 인터뷰’를 하기까지는 좀 시간이 걸렸다. 드디어 지난 며칠간, 존재감으로 꽉 찬 그의 모습을 TV로 지켜보는 일은 더없이 즐거웠다. 축하 이벤트 ‘김치버거 소동’은 소프트 아이스크림 위에 얹힌 초코시럽처럼 달콤했다.

모르긴 해도 지금 제일 행복한 사람은 김태균 선수 자신일 것이다. 그동안 마음고생을 가장 많이 한 사람도 그였을 테고. 그러나 그가 인터뷰에서 감독과 타격코치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듯이 그를 믿고 기다려 준 사람은 적지 않았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전 감독 나가시마 시게오의 일화도 곁들였다. 지금은 야구계의 전설이 된 그도 4연속 삼진아웃으로 데뷔전을 치렀으니, 김태균의 닮은 출발이 ‘스타의 전설’의 서막은 아닌가 오히려 주목했다. 대부분은 얼마간의 적응기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며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깨어난 한국의 거포’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야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더러 성마른 팬들이 호들갑을 떤 것처럼, 그의 출발이 ‘실소’할 일이나 ‘굴욕’은 분명 아니다. 또 깨어난 그의 타격감을 단순히 ‘거포 본능’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온당치 않아 보인다. 그것은 본능이 아니라 부단한 자기훈련의 결과였을 것이다. 그는 겨울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부진을 빌미로 우리가 잠시 그를 잊고 있는 사이에 투수들의 공을 보고 또 보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눈물겨운 과거에 비하면 봄날은 턱없이 짧다.

아마도 그는 언젠가 다시 부진에 빠지고 또 스스로를 다스리며 기다려야 할 시간이 반드시 올 것이다. 얼마나 혹독하게 얼마나 오래 그 시간을 견뎌야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벚꽃도 사쿠라도 봄이면 핀다던가. 그때 야구는 그의 몫이지만, 그의 선전을 믿으며 잊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아 주는 일, 그것은 우리의 몫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려는데 이승엽 선수가 오랜만에 선발로 나와 홈런포를 쏘아 올렸다는 소식이 들린다. 반갑고 또 반갑다. 우리의 기다림은 예의 발랐을까? 우리의 격려는 충분히 따뜻했을까?

성혜영 박물관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