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정약용과 형제들
입력 2010-05-06 18:33
정조 사후 19세기 초의 조선은 대내외적으로 격랑과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밖으로는 문을 걸어 닫고 안으로는 분출하는 요구를 누르기 바빴다. 가장 큰 피해자이면서도 새 시대의 희망을 연 사람들이 있었으니 정약용과 그의 두 형, 정약전 정약종이다.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학문에 전념했다. 앉아서 공부에만 전념하느라 복사뼈가 세 번이나 구멍이 뚫릴 정도였다. ‘목민심서’가 그 결실이다.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민중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삶과 직결되는 바다를 연구해 조선 최초로 해양 연구서 ‘자산어보’를 지었다. 정약종은 모진 고문 끝에 목이 잘리면서도 신앙을 지켰고 조선 최초의 한글 교리서 ‘주교요지’를 저술했다.
그리스도인에게 세 사람의 길은 하나다. 신앙과 초월, 학문과 정치, 민중과 자연은 한 사람 안에 온전히 통합되어야 한다. 그런 리더와 리더십이 그립다. 또한 세 사람은 하나같이 저술가였다. 책 한 권이 한 사람과 한 시대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 그런 작가와 저서를 꿈꾼다.
김기현 목사(부산수정로침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