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비율 카드사태이후 최저· 외부 차입금 1년새 2배… 저축銀 ‘돈맥경화’
입력 2010-05-06 17:19
서민 금융기관인 저축은행의 유동성 비율이 90%대로 떨어져 2004년 카드사태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하는 등 자금 압박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중의 풍부한 자금이 국내외 불확실성으로 장기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단기 부동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 당국은 저축은행에 대한 정기검사를 강화하는 등 긴급 점검에 나섰다.
◇저축은행 유동성 비율, 5년 내 최저=6일 금융감독원과 저축은행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현재 저축은행의 유동성 비율은 90.89%로 2008년 말 124.55%보다 33.66% 포인트 감소했다. 지난해 6월 말에 비해서는 67% 포인트 넘게 하락했다.
이는 카드사태로 신용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2004년 말의 83.84%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유동성 비율이란 단기 채무에 대한 지불능력을 나타낸 것으로 이 비율이 100% 아래로 떨어지면 고객이 원하는 시기에 필요한 금액만큼 예금을 인출하는 데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저축은행 109곳 가운데 3분의 2가 넘는 77곳의 유동성 비율이 100%를 밑돌았다. 이 중 지방의 S저축은행(42.61%), Y저축은행(49.06%) 등 33곳은 위험수위인 60%대를 밑돌았다.
자산규모 1조원 이상 대형 저축은행 24곳 가운데도 15곳이, 코스닥에 상장돼 있는 저축은행 10곳은 모두 유동성 비율 100%를 밑돌았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금융위기 직후 발행한 고금리 예금의 만기가 돌아오면서 일시적으로 유동성 비율이 낮아진 것”이라며 “올 들어 유동성이 점차 회복돼 3월 현재 유동성 비율은 135% 수준으로 높아졌다”고 말했다.
◇유동성 하락은 단기 부동화가 주원인=금융전문가들은 저축은행의 유동성 비율이 급락한 주된 원인을 금융시장의 단기 부동화 현상에서 찾고 있다. 금리인상 가능성과 그리스 등 해외금융 악재가 겹치면서 장기투자보다는 1∼3개월의 초단기 상품에 자금이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저축은행의 만기 3개월 이하 유동성 부채는 지난해 말 현재 24조1884억원으로 6개월 전보다 66%, 10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반면 유동성 자산은 같은 기간 1조211억원 감소했다.
유동성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저축은행들의 외부 차입금 의존도가 심화됐다. 2008년 말 9996억원이던 외부 차입금 규모는 1년 새 1조8082억원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 초단기자금인 콜머니는 2346억원에서 5663억원으로 급증했다. 저축은행들은 지난해 하반기 차입금과 콜머니 등을 통해 빌린 자금에 550억원의 이자를 지출했다.
◇저축은행발 금융 불안 오나=금감원이 집계한 저축은행의 위험가중자산은 지난해 말 현재 82조154억원으로 1년 새 17조원이나 늘었다.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과 경기침체로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곳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저축은행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파트 경기 침체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어 저축은행의 건전성은 더욱 악화되는 추세다.
금융감독 당국도 긴장하고 있다. 최근 저축은행에 대한 정기검사를 강화하고 국제결제은행(BIS) 비율 등 건전성 지표를 은행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유동성 문제가 지급 불능 등 최악의 사태로 번지지는 않을 것으로 당국은 예상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저축은행중앙회가 개별 저축은행에 대해 최대 1000억원의 유동성을 지원할 수 있도록 자금과 제도가 준비돼 있는 만큼 고객이 예금을 인출하지 못하는 사태가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일송 기자 il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