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오종석] 침묵하는 중국 언론

입력 2010-05-06 18:16


중국에는 1만5000여개의 매체가 있다. 인쇄 매체가 1만1000여개, 방송매체가 4000여개다. 이 중 잡지를 제외한 신문은 일간지 400개를 포함해 2100여개다. 매일 1억부가 발간된다. 방송은 라디오가 280여개이고, 중계국을 합치면 1000여개다. TV 공중파는 374개, 지방 위성TV까지 포함할 경우 3000여개에 이른다. 세계 최대인 13억 인구를 감안해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이 많은 중국 매체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3박4일째 중국에서 활개치고 다니지만 동정 하나 자체적으로 취재해 보도하지 않고 있다. 그가 지난 3일 북·중 접경지역인 단둥(丹東)역을 통과할 때부터 전 세계 주요 언론이 추적 보도하는 것과는 딴판이다. 특히 한국과 일본 언론은 경쟁하듯 24시간 김 위원장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보도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다롄과 톈진 시찰 등은 그렇다고 치자. 5일 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과 만찬을 가진 내용조차도 중국언론은 일절 보도하지 않고 있다. 국영 CCTV와 관영 신화통신,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등은 김 위원장의 방중 자체를 함구한다.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 등 극히 일부만이 한국 언론을 인용, 간단히 보도할 뿐이다.

그렇다고 김 위원장의 행적이 노출되지 않아서도 아니다. 김 위원장은 방중 첫날부터 보란 듯이 광폭행보를 이어왔다. 잠행했던 과거 방중 때와는 달라 의도적인 이목 끌기란 해석까지 나올 정도였다. 주로 특별열차만 이용했던 이전과 달리 메르세데스-벤츠의 고급 브랜드 마이바흐를 타고 도로를 달려 쉽게 노출됐다. 5일에도 김 위원장 일행을 태운 40여대의 차량행렬이 톈진에서 베이징까지 고속도로를 달렸다. 이어 베이징 한복판인 창안제(長安街)를 질주해 수많은 사람들이 교통통제에 대해 불평을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 언론들은 모른 체 했다. 일부 민간 매체가 간혹 김 위원장 방중 사안을 전하곤 있지만 직접 추적보도를 하는 대신 대학 교수나 연구원 등의 칼럼 형식 글을 내보내는 정도다. 평소 알고 지내는 한 중국인 친구는 “김 위원장이 왔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다.

CCTV 등 국·관영 매체는 통상 서열 1위인 후 주석부터 서열 9위인 저우융캉(周永康) 중앙정법위원회 서기까지 중국 최고지도부인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9명의 동정에 대해선 거의 매일 반드시 보도한다. 특히 이들이 외국 정상급 지도자와 회담할 경우 더욱 그렇다. 하지만 유일하게 김 위원장만 예외다. 김 위원장에 대해선 지난 4차례 중국 방문 때에도 방중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기까지 일절 보도하지 않았다.

이는 언론통제가 가장 잘 되는 나라 중 하나인 중국 정부의 특별 보도지침이 내려갔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김 위원장의 신변안전 등을 이유로 외부 노출을 극히 꺼리는 북한 측의 협조 요청을 받아들여 내린 조치다. 그래서인지 중국 정부는 6일까지도 김 위원장의 방중사실 자체를 확인하지 않고 있다. 한국이 주한 중국대사를 초치해 김 위원장의 방중에 대해 공개적으로 항의의 뜻을 나타내고, 미국이 김 위원장의 방중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중국 정부는 입을 다물고 있다. 김 위원장이 북한으로 돌아간 직후에나 관례적으로 방중 사실과 정상회담 내용 등을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항상 어떤 현안이 발생할 때 중국의 국내법과 중국의 전통 및 중국식 처리방법을 이해하라고 주문한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 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미 공개돼 뻔히 알려진 사실조차도 확인하지 않는 것에 대해선 이해하기 힘들다. 국제사회의 일반적인 룰에도 맞지 않는다. 국민의 기본적인 알 권리를 무시하고 침묵하는 그 많은 언론매체에 대해선 더 이해가 안 된다. 중국에 진짜 언론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베이징=오종석 특파원 js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