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흥우] 한옥예찬
입력 2010-05-06 18:16
미국인 피터 바톨로뮤, 독일인 베르너 사세씨는 우리 전통가옥의 매력에 푹 빠져 사는 한옥 마니아다. 평화봉사단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바톨로뮤씨는 36년째 서울 동소문동 한옥에서 살고 있다. 재개발로 철거될 위기에 놓이자 집을 지키기 위해 소송까지 불사할 정도로 한옥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대학 교수인 사세씨가 전남 담양에서 산 지는 채 4년이 안 됐지만 한옥 사랑은 바톨로뮤씨 못지않다. 벽안의 두 이방인들은 “자연스러운 데다 아름답기까지 하다”고 한옥을 예찬한다.
한옥의 참 멋은 ‘비움’에 있다. 현대 도시인들의 주 생활공간인 아파트가 ‘채움’의 구조라면 한옥은 비움으로써 여유로움을 찾는 구조라는 게 한옥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앞뒤로 뻥 뚫린 대청마루와 마당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열린 구조 탓에 ‘한옥은 효율적이지 못하고 겨울엔 추워 살기 불편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건 옛날 얘기다. 인테리어 기술의 발전과 건축 자재의 발달로 단점을 보완한 한옥이 21세기 참살이 생활공간으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슬로 라이프’를 즐기려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서울 북촌의 한옥 가격은 지난해에 비해 20% 안팎 뛰었다고 한다. 인간적이고 자연친화적이라는 게 한옥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런 이유로 유치원, 도서관, 의원, 동사무소, 카페, 호텔, 갤러리 등의 용도로도 확대되고 있다.
현재 서울에는 고작 8000여 채의 한옥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그나마 상당수는 재개발이란 미명하에 헐릴 위기에 놓여 있다. 한옥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관광자원이다.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가회동, 안국동, 계동, 삼청동을 아우르는 한옥 밀집 지역 북촌은 서울을 찾은 외국인의 필수 관광코스가 됐다. 북촌의 한옥 게스트 하우스는 한국의 멋과 정취를 느끼려는 외국인들이 줄을 잇는다. 다른 나라에선 경험할 수 없고 오로지 한국에서만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국토해양부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선 응답자의 42%가 한옥 거주를 희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비싼 건축비가 걸림돌이다. 한옥의 3.3㎡당 건축비는 1000만∼1500만원으로 통나무집에 비해서도 배 이상 더 든다. 대통령 직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가 발표한 ‘신한옥 플랜’이 성과를 거둬 한옥이 합리적 가격으로 보다 많이 보급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흙냄새, 바람냄새, 꽃냄새 정겨운 한옥에서 살고 싶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