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署 어버이날 앞두고 새터민 노인에 북한요리 대접 “北에 두고온 가족들 눈에 밟혀…”

입력 2010-05-06 21:45


“북한에는 어버이날이 없고 김일성·김정일의 생일만 있어요. 빨리 두 아들과 이곳(남한)에서 어버이날을 보내고 싶어요.”

어버이날을 이틀 앞둔 6일 오전 서울 신정동 양천경찰서 지하식당 ‘다정원’. 양천구에 거주하는 새터민(북한이탈주민) 55명이 둘러앉은 식탁에는 ‘평양칠향찜닭’과 명태식해가 올라왔다. 새터민 출신 요리연구가 이애란(46·여) 경인여대 식품영양조리학과 교수가 직접 요리한 것이었다. 이 교수는 세계 관광음식 박람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북한 전통 요리 전문가다.

은박지에 정갈하게 싸인 닭요리가 식탁 위에 오르자 이 교수는 오갈 곳 없는 노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찹쌀 은행 밤 대추가 들어가 있어 보양 음식으로 좋아요.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노인들은 밝은 표정으로 서로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으며 사진을 찍었다. 양천서 직원들은 이들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었다.

노인들은 “정말 일곱 가지 향기가 나는 것 같다”며 순식간에 그릇을 비웠다. 왕춘희(가명·81) 할머니는 “(평양칠향찜닭이) 원래는 북한에서 지체 높은 이들이 먹는 귀한 음식”이라고 귀띔했다.

오랜만에 고향 음식을 대접받고 북에 두고 온 자녀들이 떠올랐는지 노인들은 눈시울을 적셨다. 정수복(가명·70) 할머니는 “북한식 요리를 먹어 감개무량하다”면서도 “북한에 있는 두 아들이 생각나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정 할머니는 2006년 탈북을 하면서 손녀만 데리고 나왔다. 함경북도 청진에 남겨둔 두 아들과는 두만강의 브로커를 통해 1년에 한 차례만 통화를 하는 것이 전부라고 했다.

정유순(가명·74) 할머니는 “아껴 먹어야겠다”며 닭 요리를 다 먹지 않고 포장해 가방에 넣었다. 정할머니는 “지난달에 북한에 있는 둘째딸에게 100만원을 보냈는데 제대로 받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 할머니는 “5월이면 두고 온 세 딸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며 “딸들과 이 요리를 나눠먹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은식 양천서장은 “탈북노인들 중에는 자녀가 없는 독거노인이 많다”며 “어버이날마다 갈 곳 없는 이분들을 모시고 경로행사를 하고 있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천서가 어버이날을 맞아 새터민 노인들에게 경로잔치를 베푼 것은 올해가 3년째다. 임대아파트가 많은 양천서 관내에는 전국 1만7000여 새터민 가운데 1300여명이 모여 살고 있다.

양천서는 지난달 20일에는 탈북청소년 배움터인 서울 신월동 한민족학교 어린이 30명을 초청해 경찰서를 견학시켜 주기도 했다.

고향의 음식으로 맛있는 점심식사를 마친 노인들은 선물을 받아들고 경찰서를 나섰다. 탈북 3년째라는 김병세(가명·76)씨는 “매년 경찰이 잊지 않고 우리를 보살펴 주니 이때만큼은 북한에 남겨둔 가족이 그립지 않을 정도”라고 고마움을 표했다.

글·사진=이경원 최승욱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