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억’ ‘35억’… 무슨 숫자일까 감 잡히십니까

입력 2010-05-06 18:10


박승동 한석원 신승범 우형철 김기훈 로즈리 이근갑 최인호 최진기 백호 백인덕…. 낯선 이름들에는 1인 기업, 스타, 본좌 같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대학수학능력시험용 인터넷강의(인강) 시장에서 큰손으로 통하는 소위 ‘1타 강사’(인기 있는 강사라는 뜻)들이다.

스타에겐 돈, 사람, 인기가 붙는다. 1타 강사 한 사람이 창출하는 매출은 적게는 연 20억∼30억원에서 많게는 연 200억원을 넘는다. 별달리 투자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실은 원료도, 공장도 필요 없다. 지원 인력만 넉넉하면 된다. 강의 및 교재 연구를 돕는 상근 조교에서 스케줄 관리 매니저와 답변 전문 아르바이트생, 모니터 요원까지 1타 강사 주위에는 보조 인력들이 포진해 있다.

돈과 사람을 지탱하는 건 스타 강사의 ‘커리를 타는’(한 강사의 강의를 지속적으로 듣는다는 의미. 커리큘럼을 탄다의 준말) 팬, 즉 수강생들이다. 인기는 게시판 질문 수로 확인할 수 있다. 하루 수십 건에서 수백 건이 올라온다. 팬끼리 토론도 벌인다. 인터넷에는 ‘박승동 한석원 신승범 스타일 비교’라거나 ‘최인호 이근갑 누가 나은가요’ ‘김기훈 vs 로즈리 비교해주세요’ 같은 질문과 답변이 떠다닌다. 수강생들은 소비자이자 비평가, 열혈 팬이다. 강사의 말투를 분석하고 점수를 매기고 사생활을 염탐한다.



최근 케이블채널 tvN 특강쇼 ‘공부의 비법’을 통해 아예 엔터테인먼트 무대의 중앙으로 올라온 1타 강사. 그들의 생활을 국내 최대 온라인교육업체 메가스터디 소속 신승범(40·수리영역) 심우철(40·외국어영역), 두 강사의 인터뷰를 통해 들여다봤다. 2009년 기준으로 신씨는 연매출 233억원, 심씨는 35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온·오프라인 강의료와 교재 판매비로 구성된다.

1등만 살아남는 시장

“예전엔 여러 명이 잘 먹고 잘 살았다면 이제 소수만 잘 사는 세상이 된 거다.”(심우철)

승자 독식. 인강의 세계에서는 상위 1%가 다 갖는다. 수강인원을 제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오프라인에선 1타 강의가 마감되면 뒤이어 2, 3타가 차례로 마감됐다. 온라인에서는 그런 방식의 소득분배가 이뤄지지 않는다.

현재 학원가에서 연매출 100억원 이상 특A급 강사는 신씨를 포함해 이근갑(언어) 김기훈(외국어) 로즈리(외국어) 4명 정도다. 다음 층을 형성하는 A급 강사는 언어 수리 등 5개 영역별로 5명 안팎이다. 넓게 잡아 20∼30명. 시장을 움직이는 건 여기까지다. 나머지는 연매출 1억원을 넘기지 못한다. 과거 인기·비인기 강사의 매출 차이가 몇 배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100배 이상 벌어진다는 얘기다.

신씨는 “온라인의 양극화는 극심하다. 1, 2등 말고는 거의 돈을 못 번다”고 말한다. 심씨 역시 “인강은 나까지다. 내 밑으로는 그냥 현상유지 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한다.

인강 초기 엎치락뒤치락하던 인기 순위는 최근 몇 년간 거의 고정됐다. 수리영역에서는 ‘박승동 한석원 우형철’의 3파전에 신씨가 끼어들어 1위로 올라선 정도다.

승자가 독식하고 한번 승자는 계속 이기는 시장. 후발주자에게는 혹독한 구조다.

인강 스타로 가는 길

“먼저 소재를 잡고, 연결사를 잡고, 그 다음에 직독직해하란 말이야. 알겠나? 지금부터 30초 준다. 지문 읽으세요. 인터넷도 안 끊고 갑니다. 같이 푸세요.”

지난달 23일 오전 11시50분 서울 노량진2동 노량진메가스터디학원 강의실. 심씨의 시선이 수강생과 카메라 사이를 분주하게 오갔다. 학생 없는 스튜디오 녹화도 있지만 요즘 인기 인강은 오프라인 학원 수업을 찍어 판매한다. 현장감 때문이다. 강사는 오프라인 수강생과 카메라 모두를 상대해야 한다. 준비도 그만큼 어려워졌다. 대신 혼자 모든 책임을 떠맡는 건 아니다. 이날 강의를 모니터하고, 수업 후 학생들을 상담하고, 인터넷 질문에 답한 건 심씨가 아니었다.

외국어영역의 심씨 강의 한 편이 완성되기까지 무대 뒤에는 보조인력 10명이 버티고 있다. 연구조교 3명은 스케줄 관리와 학생 상담, 교재 개발 등을 돕는다. 나머지 재택 아르바이트생 7명은 인터넷 질문을 관리한다. 수리영역의 신씨를 돕는 팀은 무려 31명이다. 전임 연구원만 6명. 아르바이트 대학생 25명은 매일 500여개씩 올라오는 질문에 실시간으로 답변한다.

신인 강사에게는 이런 투자가 불가능하다. 차이는 여기서 시작된다. 적게 벌어 적게 투자하면 강의 질은 높아지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적게 벌 수밖에 없는 빈곤의 악순환이 생긴다. 상품화도 서툴 수밖에 없다. 심씨는 “강사 이미지를 만들고 강의를 포장해 상품으로 만드는 작업은 혼자 할 수 없다. 반드시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 신인은 투자를 할 수가 없다. 절대적으로 불리하다”고 했다.

심씨는 신인 강사가 1타 강사 되는 건 신인 연기자가 장동건 될 확률 정도라고 단언했다.

“스타 강사 되겠다고 찾아오는 친구들, 나는 미친 짓 하는 거라고 본다. 연예계처럼 학원가도 성공만 하면 대박이지만 성공률은 지극히 낮다. 재투자도 많이 해야 하고, 생명도 길지 않다.”

나는 이렇게 성공했다

고려대 수학교육과를 졸업한 뒤 6개월간 고교 수학교사로 근무한 신씨. 수학을 잘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에 졸업 후 5년간 국내에 나와 있는 모든 문제집을 독파했다. 학원으로 옮긴 뒤 강의는 체력이 허락하는 한 많이 했다. 수업이 끝나면 새벽 2시까지 하루 4명씩 무료 상담을 했다. 신씨가 스타 강사가 되는 데는 이때의 경험이 컸다.

“수학강사에게 수학을 잘 가르치는 건 기본이다. 다음은 학생이 뭘 못 알아듣는지, 이 시기에 왜 애들이 공부를 안 하는지 그걸 알아야 한다. 5월은 재수생이 연애를 많이 하는 시기다. 9∼10월에는 독서실 옥상에서 친구들과 몰래 술을 마시는 남학생들이 생긴다. 애들 상황을 아니까 적절한 조언이 가능하다.”

강사 생활 10여년. 준비 없이 수업에 들어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풀었던 문제도 반드시 다시 푼다. 간단한 산수는 답을 외우거나 적어간다. 계산과정을 건너뛰기 위해서다. 신씨는 “수업은 한판 연극이다. 사소한 실수가 수업밀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했다.

연세대를 졸업한 뒤 보습학원을 거쳐 노량진 학원가에 진출한 심씨 역시 준비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말했다. 인강은 더 이상 쇼맨십이 통하는 시장이 아니다. 수능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어야 지도가 가능하다. 역시 생존비법은 연구와 투자다.

“1만∼2만원짜리 물건을 살 때도 비교해보지 않느냐. 7만∼8만원짜리 강의를 사는데 아이들이 내용을 안 살피겠나. 강의 듣고 점수가 얼마나 오를지, 효과는 얼마나 있을지 따진다. 새 교재만 한 달에 2∼3권 개발한다. 쉴 새 없이 연구하고 투자해야 한다.”

후계자 키우기

삽자루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우형철(수리영역)씨는 강사 매니지먼트에 도전하고 있다. 젊은 강사를 뽑아 월급 주고 교재 연구시킨 뒤 데뷔시킨다. 강사가 뜨면 회사가 수익 일부를 가져가고 그 돈으로 또 후보를 뽑아 훈련시킨다. 가수 박진영이 비를 키우고, 비가 아이돌그룹 엠블랙을 키우는 식이다.

신씨에게도 스타 강사를 꿈꾸는 후배들이 종종 찾아온다. 신씨는 제일 먼저 수학 실력을 본다. 그리고 잘 가르치는 재능과 성실함을 따진다. 인강에서 무시할 수 없는 게 또 있다. 외모다. 인강 강사는 카메라 앞에 서는 사람이다. 옷차림, 머리 모양, 말투까지 입방아에 오른다. 잘 생길 필요는 없지만 호감 가는 외모는 장점이다. 신씨는 “웃기게 생긴 외모는 곤란하다”며 웃었다.

“아이들은 과목별로 강사 외모에 어떤 기대치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수학교사에게는 아빠처럼 끌어주는 역할을 기대한다.”

최근 신씨에게는 조건에 꼭 맞는 후배 한 명이 찾아왔다. 자리를 잡을 때까지 도와주고 언젠가 자신이 은퇴하면 ‘후계자’로 지목할 계획이다. 1타 강사 신씨의 후계자 타이틀은 신인 강사에겐 보증수표가 될 터였다.

언제까지 스타강사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묻자 두 사람 모두 “길게 봐야 5년”이라고 했다. 노동 강도는 세고 경쟁은 심했다. 제도는 수시로 바뀌었다.

최근에는 EBS라는 복병을 만났다. 지난 3월 정부가 사교육 부담을 덜기 위해 올 수능의 70%를 EBS에서 출제하겠다고 발표했다. EBS 인강은 무료다. 유료 인강 시장에 타격이 오는 건 당연했다. 올 1분기 메가스터디 매출은 1%가 떨어졌고 주가도 60% 이상 폭락했다. 유료 인강은 기로에 선 걸까. 시장은 늘 그렇게 불안했다. 1타 강사의 영예는 언제 갑자기 사라질지 모를 일이다.

신씨는 “학생들을 좋아하고 가르치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1위와 격차가 두 배쯤 벌어지면 그땐 강의를 접을 생각”이라며 “올라가는 것과 내려오는 건 다른 일인 것 같다”고 했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