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위험한 ‘벤처’ 존폐기로 대북사업 12년… “결국 돈되는 사업 어떻게든 버텨야죠”
입력 2010-05-06 17:52
금강산관광 중단 22개월. 서울 연지동 현대아산 사무실에서 만난 홍보부 직원은 “고난의 행군 중”이라고 회사 분위기를 전했다. 올 상반기에는 풀리겠지 했는데, 지난 3월 천안함과 함께 금강산관광 재개의 꿈도 침몰됐다.
고난의 행군
2008년 7월 11일 북측 초병의 총격에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가 사망했다. 금강산 가는 길은 또 다시 닫혔다. 현대아산은 금강산관광 중단으로 지난 3월까지 2640억원의 매출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2007년 금강산 관광객은 연간 35만명에 달했다. 현대아산에 따르면 관광객 숫자가 25만명만 넘으면 손해는 보지 않는다고 한다. 2008년 목표는 45만명. 1998년 금강산관광 사업을 시작할 때 세웠던 목표, 연 50만명이 멀지 않았다. 게다가 2007년 12월부터 개성관광도 시작됐다. 그렇게 현대아산이 대북사업 10년의 결실을 따려던 순간, 총성 한 방이 모든 걸 뒤집어놓았다.
1100명에 달하던 직원 중 70% 정도가 회사를 떠났다. 남은 임직원도 월급이 깎였다. 직원들은 애들 학원 보내는 걸 줄이고,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했다. 워낙 여러 번 비상경영사태를 겪다 보니 현대아산의 위기대처 방식은 하나의 매뉴얼처럼 작동한다. 제일 먼저 월급과 상여금을 줄이고, 인력 구조조정을 실시한다. 그것으로도 안 되면 자산을 내다 팔고. 위기가 지나가고 관광사업이 좋아지면 사람들을 다시 불러들이고 임금을 정상화한다.
현대아산과 함께 12년을 지내온 한 부장은 “그동안 월급 인상이 세 번 있었고, 월급 삭감은 그보다 더 자주 있었다”면서 “무슨 놈의 사업이 이렇게 굴곡이 많으냐”고 신세타령하듯 말했다. 신입사원을 뽑지 못한 지도 3년이 됐다.
현대아산이 자체적으로 금강산관광에 투자한 돈은 지금까지 7000억원 가량 된다. 그런데 금융권에서는 금강산에 있는 현대아산 소유의 사업권과 시설들을 담보나 자산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대아산은 대출을 받을 수 없다. 금융권의 판단은 정확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북한은 지난달 금강산에 있는 남측 부동산에 대해 몰수 및 동결 조치를 취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주요 주주들은 지난해 4월 운영자금 200억원을 현대아산에 긴급 수혈했다. 그 운영자금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금강산관광이 꽉 막힌 상황에서 현대아산이 그나마 숨을 쉬고 있는 것은 건설부문 사업 덕이다. 현대아산의 매출 구조는 관광 경협 건설로 구분되는데, 관광과 건설이 각각 45%쯤 차지한다. 지난해 건설부문 매출은 1144억원. 최근 병원과 공항 공사를 수주했고, 4대 강 사업에도 컨소시엄으로 참여했다.
애초 건설부문은 금강산과 개성공단 토목공사를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다가 2006년 10월 북한 핵실험 사태를 거치면서 남한으로도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대북사업만으로는 회사가 안정성을 가질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판단은 옳았다. 사업다각화가 아니었다면 현대아산은 지금 훨씬 더 절망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북한라인’ 아닌 ‘정부라인’ 필요
금강산관광이 언제 재개될지는 극히 불투명하다. 연평해전, 핵실험, 관광객 억류와 피격, 고질적인 자금난, 심지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까지 겪은 백전노장이라 해도 이번에는 쉽지 않다. 북핵 사태의 여파도 6개월 만에 회복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22개월째 개점휴업이다.
금강산관광을 밀어가는 힘을 남과 북의 정부, 국민정서, 자금사정 등으로 구분해 볼 때, 어느 것 하나 순풍이 아니다.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북한을 보는 국민 시선은 어느 때보다 차갑다. 현대아산에 기댈 언덕이 돼주던 현대그룹의 재무상황 역시 재무개선약정 체결 대상으로 거론될 정도로 안 좋다. 보다 큰 문제는 남북관계다. 집권 26개월 중 22개월간 금강산관광이 중단됐다는 것은 이명박 정부 시대 남북관계의 현실을 말해준다.
남쪽이건 북쪽이건 정부가 나서지 않고는 관광 중단 사태가 해소되지 않으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현대아산 측도 “기업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그런데 남과 북은 대화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8월 현 회장이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했고, 올 2월 개성에서 금강산·개성관광 재개를 위한 남북실무회담도 열렸지만 돌파구는 찾지 못했다.
12년 전, 현대아산이 대북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가장 큰 문제는 명백히 북한이었다. 그런데 남한에서의 정권 교체로 대북사업 지형이 돌변했다.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 장애물로 등장한 것이다. 햇볕정책을 비판하는 보수정권의 등장으로 현대아산은 10년간 누렸던 정부 지원을 잃어버렸다. 게다가 사회 전체에 대북강경파들의 목소리가 부쩍 커졌다. 현대아산으로서는 북측이 아니라 남측을 설득하며 대북사업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현대아산을 대표하는 역대 사장이 누구로 바뀌었는지는 현대아산이 직면한 문제가 변했음을 잘 보여준다. 초기 사장직을 맡은 김윤규 윤만준 등이 ‘북한통’이었다면, 근래에는 남한에서 통하는 사람들이 사장으로 영입됐다. 지난 3월 자진사퇴한 조건식 사장은 통일부 차관 출신이다. 장경작 현 사장은 대북사업 경력이 없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사장, 롯데호텔 사장 등을 지냈다. 눈에 띄는 것은 이 대통령과 고려대 경영학과 동기라는 사실. ‘북한라인’이 아니라 ‘정부라인’이 더 시급하다는 현대아산의 상황 인식이 장 사장을 선택하게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천안함 사건은 금강산관광을 재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혔다. 금강산관광 대가가 북한 군부의 자금줄이라는 주장은 꽤 오래 전부터 제기됐다. 현대아산 측은 “잘 모르는 소리”라고 반박한다.
현대아산이 관광대가로 북한에 지불한 돈은 한 해 최대 2400만 달러(약 267억원)다. 그런데 북한에서 모래를 채취해 들여오는 대가로 지불하는 돈은 연간 1억 달러에 달한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에게 지난해 지불한 임금만도 3800만 달러나 된다. 금강산관광을 끊으면 북한의 돈줄이 막힌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약하다는 게 현대아산 측 주장이다.
남북교역은 이미 상당한 정도로 진행되고 있다. 남한에서 판매되는 바지락의 40%가 북한산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북한이 밉다고 지금 진행되는 모든 경협사업을 중단시킬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하더라도 그것이 북한에 대한 결정적 타격이 되긴 어렵다. 북한의 연간 교역량은 29억 달러. 이 중 남한과의 교역량은 30∼40%다. 나머지 60∼70%는 중국과의 교역량이다. 북한 바지락의 남한 수입을 금지한다고 해도, 그 북한 바지락은 중국을 돌아 다시 남한땅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북한 운명의 키를 잡고 있는 게 중국”이라며 “중국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북한에 대한 압박은 효과가 없다. 금강산관광만 막으면 북한이 고립될 거라고 보는 건 착각이다”라고 말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죠”
현대아산 직원들이 요즘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생존’이다.
“어차피 이 사업은 돼요. 저는 그렇게 확신해요. 그러니까 어떻게든 살아남아야죠. 살아남아서 과실을 따야죠.”
홍보부 김한수 부장의 이 말은 현대아산 직원들의 생각을 대변한다. ‘과실’이란 대북사업 12년의 과실이다. 미지의 영역이고 새로운 사업이라는 점에 끌려서 현대아산으로 왔다는 김 부장은 대북사업을 미국의 서부개척사업에 비유했다.
“서부개척사도 보면 1세대는 그냥 죽어요. 과실은 2세대가 먹는 거예요. 정주영 명예회장이 1세대라면 현정은 회장이 2세대인 거죠. 여기까지 얼마나 힘들게 왔는데, 과실을 못 딴다고 하면 너무 억울하지 않겠어요?”
현대아산 내부에는 대북사업이 돈 되는 비즈니스란 확신이 존재한다. 금강산관광은 사업 시작 7년 만인 2005년부터 3년 연속 흑자를 냈다. 2007년 흑자 규모는 169억원. 관광사업은 장치사업과 비슷해서 초기 비용을 지불하고 나면 수익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고 한다. 게다가 같은 해 개성관광이 시작됐고, 백두산관광에도 합의했다. 개성공단 2차 개발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만약 관광 중단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더라면 대북사업 10년을 맞는 2008년 현대아산의 수확은 꽤나 풍성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상대로 되지 않는 게 대북사업이다. 통제할 수 없고 계산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들에 둘러싸여 있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 속에 숨은 과실을 따겠다고 나선 현대아산을 한국에서 가장 대범한 벤처기업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김남중·강준구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