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집게 강사가 꿈을 가르칠 수 있나요?”

입력 2010-05-06 17:25


‘나? 대안학교 졸업생이야!’ 김한성 외 14인/글담출판사

‘참교육’에 대한 강한 갈망과 현실 교육에 대한 실망으로 만들어진 대안학교들. 한국 최초의 대안학교인 간디학교가 2001년 졸업생을 배출한 지 10년이 지났다. 강산이 한 번 바뀌는 세월에도 고려대 자퇴생 김예슬씨처럼 비정한 교육 현실에 질겁을 하고 학교를 뛰쳐나오는 이들이 줄지 않고 있다.

이 책에서 대안학교 졸업생 15명은 새로운 교육 환경에서 보낸 3년의 시간이 자신들에게 어떤 변화를 불러왔는지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대안학교를 택하게 된 계기, 실제 생활, 졸업 후 진로 등을 생생하게 고백하기 때문에 참교육을 고민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유용한 길잡이가 된다.

대안학교에 대한 가장 흔한 편견 중 하나는 이 학교에서는 국어 영어 수학 등 입시 과목을 배울 수 없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저자들에 따르면 대안학교에서도 국영수 등 중등교육 과정을 충실하게 배울 수 있다. 다만 입시를 목적으로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또한 이 과목들의 비중이 높지 않은 점도 일반 학교와는 차별화된다. 대신 국토 순례, 농사, 목공예 체험 등 특별수업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

금산 간디학교를 졸업한 최하나씨는 특별수업에서 향후 진로에 대한 실마리를 얻었다. 최씨는 간디학교에서 40일간 국토 순례를 한 경험이 유독 인상 깊었다고 털어놨다. 걸으면서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고 자신이 진짜 원하는 바를 정직하게 추구하게 됐기 때문이다.

한국 대학 생활에는 회의를 느껴 과감히 유학을 결정하게 된 데는 간디학교 3학년 때 호주로 해외이동학습을 한 경험이 영향을 끼쳤다.

“간디학교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다. 한국에서 대학을 포기할 수 있었던 용기도 간디에서 얻은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나에겐 무척 중요한 일이다.” 최씨는 현재 런던예술대학 소속 런던컬리지오브커뮤니케이션에서 마케팅과 광고 미디어 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생인 황바람씨는 농업 특별활동에서 적성을 발견했다.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를 졸업한 황씨는 책상에서 묵묵히 공부하는 ‘묵학’을 통해 사색의 즐거움을 발견했고, 농촌 현장실습을 통해 자연을 이해했다. 결정적으로는 선생님의 제안으로 듣게 된 ‘퍼머컬처(Permaculture)’ 수업이 황씨를 산림자원학의 세계로 이끌었다.

신기한 점은 이러한 특별활동을 통해 학생들은 스스로 공부하는 법도 터득하게 된다는 점이다. 텃밭을 가꾸거나 묵묵히 공부하는 습관은 노력을 중요하게 여기고 과정을 즐기는 사람으로 만든다. 대안학교에서는 입시교육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 조절하는 훈련을 시키므로 결국 최상의 입시교육을 제공하는 셈이다. 한빛고등학교에서 김현진씨는 자율적인 공부의 매력을 알게 됐다. 이 곳에서 학생들은 ‘식구총회’라는 모임을 통해 자유롭게 토론하고 고민한다. 소극적이고 말없는 아이는 한빛고에서 3년 동안 스스로 인생을 개척하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하태욱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15명의 청년들은 공통적으로 대안학교의 경험이 자신들에게 공동체와 소통의 문제를 고민하게 했으며, 치열한 자기주도적 학습을 통해 진정한 ‘학력’을 기를 수 있었음을 이야기한다”면서 “중요한 것은 시설이나 족집게 명강사가 아니라 스스로 불안감을 이기고 꿈꾸기를 멈추지 않은 것임을 대안교육의 졸업생들은 증명해준다”라고 책의 의의를 밝혔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