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출판] 거친 ‘결혼의 바다’ 행복으로 가는 나침반은
입력 2010-05-06 18:28
17일간의 부부항해 내비게이터/엄정희/KOREA.COM
엄정희(61·사진) 한국사이버대학 가족상담학과 교수는 국내 유통업계의 대부 이승한(63) 홈플러스 회장의 아내이다. 엄 교수와 이 회장은 결혼한 지 36년이 됐지만 ‘닭살 커플’로 통한다. 아직도 깜짝 이벤트와 연애편지를 교환한다. 엄 교수는 이 회장을 두목으로 부른다. 엄 교수의 애칭은 오리이다. 오리는 엄 교수가 신혼시절 삐칠 때면 입을 쭉 내밀었는데, 얼굴 생김새나 모습이 월트 디즈니 만화영화에 나오는 오리와 똑같다고 해서 붙여졌다.
요즘도 매일 아침 남편이 차타는 곳까지 배웅한다는 엄 교수는 첫 사랑의 예민함을 무뎌지지 않게 간직하고 살아가려 애를 쓴다. 고층에서 살고 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입술로 칭찬하고 발로 배웅하라’는 것을 실천한다.
엄 교수는 ‘부부라는 행복의 배’를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위에 떠있는 한 척의 유람선 타이태닉호에 비교한다. 그는 “파괴와 해체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포스트모던의 바다에서 수많은 가정이 파선하고 있다”면서 “타이태닉이 빙산 주의라는 경고 신호를 무시해서 침몰한 것과 마찬가지로 부부 항해에서도 방심은 금물”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100세 시대 필수품으로 가정 항해 내비게이터를 꼽는다. 결혼생활도 항해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책에는 세상의 모든 부부가 넘어야 할 결혼 적응의 17가지 이슈에 대한 명쾌한 답이 들어있다. 책은 하루에 한 문제씩 17일간에 걸쳐 해결하면 행복의 섬에 도착할 수 있는 비법을 소개한다. 본격적인 항해에 앞서 엄 교수는 자신이 겪은 가슴 아픈 사연을 고백한다. 경기여고와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한 저자는 그야말로 남부러울 것이 없는 환경을 갖췄었다.
하지만 엄 교수는 여느 부부보다도 많은 아픔을 겪었다. 그는 3개의 큰 폭풍우를 이겨냈다고 했다. 첫 번째 폭풍우는 결혼 5년이 지나도록 사랑하는 남편의 아이를 갖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힘들게 얻은 아들 성주를 불의의 사고로 하늘나라로 보낸 것이 두 번째 폭풍우다. 아이를 잃은 상실감에 식음을 전폐하다 위암 판정까지 받았다. 3번째 폭풍이었다. 삶의 의욕을 완전히 잃어버렸던 엄 교수에게 위암 진단은 감기 정도로 무감각하게 다가왔다. 모든 것을 포기했었다. 그러나 고사리 손을 모아 간구하는 어린 딸의 기도와 남편의 헌신적인 보살핌은 죽었던 나뭇가지에 새순을 돋게 하고 다시금 삶의 의지를 되찾게 해줬다.
엄 교수는 그 후 바쁜 기업가의 아내로 현명하게 남편을 내조해 홈플러스가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늦은 나이에 또 공부를 시작했다. 석사학위를 마치고 59세에 박사학위를 땄다. 남들이 정년을 앞두고 은퇴 이후의 삶을 고민할 때 대학 교수로 임용돼 가정상담 전문가로서의 삶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책에는 심리학적 근거로 한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는 17가지 실제적인 항해 수칙이 수록돼 있다. 36년차 주부로서의 깊은 통찰과 조화로운 답안을 보면 저자의 삶의 혜안을 엿볼 수 있다. 항해를 위한 점검, 항로 탐색하기, 위험한 암초 피해나가기, 다가오는 파도 뛰어 넘기, 뜻밖의 돌풍 빠져나오기, 영혼의 등대 찾기 등으로 구성됐다.
행복한 부부 생활을 돕는 풍부한 팁도 풍성하다. 의사소통 10계명, 부부 갈등을 지혜롭게 해결하는 10가지 방법, 외도를 예방하는 8가지 기술, 부부 갈등 해결 10단계, 분노를 다루는 10가지 묘책이 들어 있다.
무엇보다도 홈플러스 이승한 회장과 엄 교수의 사적인 일기, 편지 등이 들어 있다. 회갑을 넘겼지만 변함없이 신혼처럼 지내는 행복 노하우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올해 회갑인데, 앞으로 삶은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닌 나누는 삶이었으면 좋겠어요.” 저자는 인세 전액을 지구촌교회 사회복지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는 장애인 빵 공장 뜨랑슈아에 기증할 작정이다.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