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고 있는 산업단지 재정 ‘야금야금’
입력 2010-05-05 21:21
벤처회사인 A사는 2008년 수도권의 한 산업단지에 둥지를 틀 생각이었다. 분양을 받자니 큰돈이 없어 임대로 마음을 굳혔다. 하지만 임대료는 생각 외로 비쌌다. ㎡당 4만2000원으로 평당 13만원 정도였다. 1000평이면 만만치 않은 금액이었다. 1∼2년 전만 해도 ㎡당 1만원 남짓이면 입주가 가능했는데 3배나 오른 것이다. 결국 A사는 욕심을 버리고 더 싼 산업단지를 찾아나서야 했다.
제조업체들이 비싼 임대료 등을 이유로 산업단지 내 임대를 꺼리면서 텅빈 산업단지가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입도로 등 인프라 구축에만 매년 1조원대의 예산이 들어가는 산업단지가 앞으로도 계속 공급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국가 재정 낭비와 국토 비효율성이 심각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임대 신청률 5%에 그쳐=5일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산업단지 중 임대산업용지에 대한 신청률은 2008년 46%에 이어 올 3월에는 5% 미만으로 떨어졌다. 100% 신청이 완료됐던 2006년 이전과 비교하면 심각한 수준이다. 이처럼 임대가 부진한 주된 이유는 산업단지 주수요처인 중소기업들이 경기 불황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지만 임대료 상승에도 그 원인이 있다. 2008년 이전까지는 임대료가 조성원가의 1%였지만 이후 3%로 올랐다. 더욱이 기업들 입장에서는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기대 이익을 노리면서 임대보다는 분양을 선호하고 있다. 지난해 분양의 경우 미분양률은 불과 1.5%였다.
문제는 텅텅 빈 산업단지에도 막대한 재정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산업단지가 조성되면 접근성과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진입도로와 폐수시설 등을 국가가 지원하는데 연간 1조원가량의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진입도로의 적합성도 논란이 되고 있다”며 “오로지 산업단지를 위한 도로가 아니라 지역 내 교통량 해소 목적의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수요 없는 산업단지 공급으로 인한 국토의 효율적 이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국토부의 해소 방안 카드는=국토부는 다음달 업체로부터 외면받는 산업단지 임대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임대 후 분양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거나 임대료를 낮추는 방안을 동시에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대료를 낮추는 방안에 대해선 나라 곳간을 책임지고 있는 기획재정부가 반대 입장을 나타내 쉽게 결론이 나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는 또 향후 산업단지 공급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 중이다. 국가산업단지가 아닌 일반산업단지의 경우는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하기 때문에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올해부터 2012년까지 지자체가 공급할 산업단지와 지정 후 개발을 앞둔 단지는 총 268.8㎢이다. 지난 3월 국토부가 수요예측 조사를 통해 같은 기간 120㎢의 산업단지가 필요하다고 전망한 것의 2배가 넘는다. 이 계획이 시행된다면 과잉공급은 불 보듯 뻔하다.
국토연구원 장철순 연구위원은 “정교한 수요예측 없이 계획된 산업단지가 모두 들어서면 과잉공급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며 “수요가 없는 산업단지는 개발시기를 뒤로 미루는 등의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