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1·21 사태는 극좌 소행”… 美, 닉슨 시절 비밀 외교문서 공개

입력 2010-05-05 18:24

미국이 1969년 북한의 미 정찰기 격추 당시 군사보복을 고려했다가 포기한 사실이 밝혀졌다. 또 71년에도 휴전선에서 남북 간 충돌 위기가 있었으나 남북 핫라인을 통해 극복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은 미 국무부가 4일(현지시간) 비밀해제해 공개한 69∼72년 리처드 닉슨 행정부 시절의 한국 관련 외교문서에 기록돼 있다. ‘미국의 대외관계 1969∼1972년 한국’이라는 제목을 단 489쪽 분량의 문서다.

◇일촉즉발의 상황=미 외교문서에 따르면, 69년 미 정찰기 EC-121기가 북한군에 격추돼 31명이 숨진 사건이 발생했을 때 닉슨 대통령은 즉각적인 군사보복 검토를 지시했다. 외교안보팀은 군사적인 충돌의 경우 북한 지도체제를 더욱 공고하게 해 김일성의 권력이 더 강해질 것으로 분석했다. 또 베트남전 와중에 미군의 한반도 작전 역량이 제한적인 점도 고려해 군사보복은 포기했다.

71년 12월 비무장지대에서 남측의 군이 기관총 500발을 난사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에는 북한이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김일성 북한 주석(당시 수상)의 동생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 사이에 설치된 비밀 직통전화를 통해 “보복하겠다”고 알려왔다. 이후락은 “쓰러진 나무에서 반사된 빛을 적군으로 오인해 사격한 것”이라고 설명했고 북한은 이런 해명을 받아들였다.

◇정치 비사 기록=72년 남북공동성명을 추진한 이후락 중정부장은 남북정상회담도 추진했으나 김종필 당시 총리가 “너무 서두른다”고 제지했으며 박 대통령도 정상회담에 동조하지 않았다고 기록돼 있다.

당시 평양에서 이 부장을 만난 김 주석은 68년 김신조 일행이 휴전선을 넘어 청와대 침투를 기도한 이른바 1.21사태는 북한 내 극좌세력이 주도한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부장은 북한 정권의 힘과 활력이 예상에 못 미친다고 분석했으며, 김 주석은 “현실감 있고 통찰력을 갖춘 인물”로 평가했다.

71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신민당 후보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에는 월리엄 로저스 국무장관에게 “내가 대선에서 승리한 뒤 쿠데타가 일어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우려했다.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의 비망록에는 김대중 후보가 매력적이고 적극적인 정치인이라고 기록돼 있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