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권 한복판 힙합 메아리친다… 美 흑인음악 바람

입력 2010-05-05 18:37

지난달 24일 저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한 공연장에 하마스 경비대원들이 들이닥쳤다. 경찰은 “공연을 중단하라”며 관중을 쫓아내고 무대에서 공연하던 사람들을 끌어내렸다. 이곳 가자지구에선 처음으로 힙합 공연이 펼쳐지는 상황이었다. 경비대는 “비도덕적인 춤”이라며 브레이크댄스를 추던 비보이(B-boy) 6명을 연행했다.



비록 이날 공연은 중단됐지만, 공연장을 꽉 채운 수백명의 관중은 중동지역, 특히 근엄한 이슬람 문화권의 팔레스타인에서도 힙합을 향유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입증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미국 흑인 문화인 힙합이 아랍권 젊은이들에게 각광 받고 있다고 3일 보도했다.

‘아랍 힙합 리그’라 불리는 중동지역의 힙합 가수들 중에서 ‘아랍 힙합의 여왕’으로 불리는 영국 출신의 팔레스타인 여성 래퍼 섀디아 만수르, 캐나다계 팔레스타인 힙합그룹 댐(DAM), 이라크 힙합가수 나르시시스트 등은 중동은 물론 아프리카에서도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반미감정이 높은 이들 지역에선 몇 해 전만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들의 노랫말은 직설적이다. 아랍인을 향해 스스로 자긍심을 가질 것을 촉구하면서 평화와 자유를 노래한다. ‘힙합 외교 프로젝트’라는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조슈아 아센은 “아랍 힙합 리그의 목적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에 있어 논쟁의 어느 한쪽에 서길 거부한다”며 “우리의 목표는 우리의 노래와 메시지에 공감하는 전 세계 수백만명의 팬들이 마음에 느끼는 대로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자지구가 콘크리트 장벽으로 막혀 있고, 이슬람 국가들도 이들을 마땅찮아 하지만 아랍의 힙합은 확산되고 있다. 인터넷이 이들의 무기다.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 인맥사이트인 마이스페이스나 트위터를 통해 아랍 힙합 리그의 존재가 알려지고 팬이 증가하고 있다.

이들의 외교적 잠재력은 미 국무부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국무부는 지난달 아랍 힙합 리그의 밴드들이 모로코 알제리 요르단 레바논 등에서 순회공연을 하도록 후원했다. 공연장엔 ‘우리의 무기는 (폭력이 아닌) 말’이라고 적힌 대형 간판이 설치돼 있었다. 이들은 영어와 아랍어로 평화와 자유를 노래하며 보수적인 이슬람 지역에 일종의 문화 충격을 주고 있다.

이달 1일에는 1주일 전 가자지구에서 쫓겨난 이들이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다시 모였다. 섀디아와 댐, 나르시시스트 등이 무대에 올라 열정적인 공연을 펼쳤다. 500여명의 관객은 주먹을 위로 치켜들고 춤추며 영어와 아랍어로 노래를 따라했다.

아센은 “하마스는 우리를 탄압하고, 미 국무부도 순회공연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을 제외하는 등 소극적인 면이 있다”며 “양쪽 모두 힙합을 제대로 이해하고 새로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랍 힙합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을 증폭시킬지, 아니면 화해의 다리를 놓게 될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라며 “어쨌든 강한 힘을 형성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