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울려퍼진 희망의 하모니…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베토벤 ‘운명’ 연주, 조용필 ‘꿈’ 열창

입력 2010-05-05 21:17

한센인들의 보금자리인 전남 고흥 소록도에 세계적 관현악단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선율과 가수 조용필씨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레이디 R 재단은 어린이날인 5일 오후 2시 국립 소록도병원 내 우촌복지관에서 정운찬 국무총리와 주호영 특임장관, 유종하 대한적십자사 총재, 한센인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AT 소록도’ 행사를 가졌다.

1945년 창단돼 런던 3대 오케스트라로 꼽히는 필하모니아는 귀에 익숙한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운명’을 1시간여 정도로 압축해 들려줬다. 지휘는 피아니스트 출신의 거장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가 맡았다.

한센인들을 위해 출연료 없이 무대에 선 조용필씨도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친구여’와 ‘꿈’ 두 곡을 열창했다.

공연에 앞서 정운찬 총리는 ‘친구여’의 가사를 인용,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 했지, 라는 노랫말처럼 한센가족과 국민 모두가 다정한 친구가 됐으면 좋겠다”고 축사를 했다.

영국 찰스 왕세자도 영상 메시지를 통해 “한센인들이 이번 연주회를 통해 그간의 아픔을 덜었으면 한다”며 “희망을 잃지 않고 미래를 열어가기 바란다”고 말했다.

연주회에 참석한 한센인들은 조용필씨가 노래하는 동안 옆 사람과 어깨를 잡고 작은 소리로 따라 부르는 등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주민자치회장 김명호(60)씨는 연주가 끝난 뒤 “귀한 손님들이 대서양을 건너 한반도 남쪽의 작은 섬까지 찾아와 음악을 들려주니 고마울 따름”이라며 “솔직히 잘 모르는 클래식이지만 마음이 평온해졌다”고 말했다. 도양읍 소록출장소 민원담당 최숙희(43)씨는 “한센인들이 고마운 뜻에서 잔치라도 열려고 했으나 대부분 노령인데다 거동이 불편해 준비를 못했다”며 “한센인들을 향한 편견과 부담스런 시선이 사라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필하모니아의 공연은 레이디 R 재단 회장인 이정선(61)씨의 노력으로 성사됐다. 전남 함평 출신으로 로이터통신사 전 회장인 로더미어 자작과 결혼한 이씨는 2004년부터 네 차례 소록도를 방문해 봉사활동을 하며 한센인들과 가까워졌다. 이씨는 이들에게 음악을 선사하고 싶다는 뜻을 간직해오다 자선공연을 주선했다. 레이디 R 재단은 지난해 7월 이씨가 한국과 동티모르, 가나 등 전 세계의 소외된 계층을 돕기 위해 설립했으며 이씨는 필하모니아 후원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와 청소년적십자, 서울 보라매병원, 전남대병원, 레스토랑 빌라에트바스, 패션모델 자원봉사 모임인 이노엠모델 등도 이번 공연을 도왔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