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기운 담뿍 머금은, 약초 향에 취해볼까… 산청으로 떠나는 한방웰빙여행

입력 2010-05-05 17:24


지리산 천왕봉이 앞산과 뒷산인 경남 산청에는 아주 특별한 지역이 있다. 백두대간 등뼈의 강한 지기가 서린 곳으로 지명조차 금서면 특리(特里)이다. 특리는 옛날 가락국의 궁궐이 있던 왕산 자락으로 2007년에 대한민국 국새를 제작했던 곳. 금서면의 옛지명은 금석학을 뜻하는 금석(金石)으로 이곳에서 대한민국 국새를 제작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난 셈이다.국새전각전이 위치한 특리에 한방과 약초를 주제로 한 전통한방휴양관광지가 들어선 것도 한의학의 기초이론인 음양오행설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한방의료관광을 겸한 산청 웰빙여행은 전통한방휴양관광지의 불로문(不老門)을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한의학과 약초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산청한의학박물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한방체험실. 진주에서 옷가게를 한다는 민경이(45)씨도 이곳에서 무료로 건강나이, 전신반응측정, 악력측정, 체지방측정, 말초혈액순환측정을 했다. 대체로 건강한 편이었으나 혈압이 조금 높게 나왔다.

고민하던 민씨는 전통한방휴양관광지의 전통탕제원을 찾았다. 한방진료를 겸한 탕제원은 전통 옹기에서 한약을 달이는 것이 특징. 49가지의 문진을 거쳐 진맥을 한 결과 증상은 혈허(血虛). 체질상 혈이 허해지기 쉬우므로 사물탕을 가감해서 혈을 보해야 한다는 처방을 받았다.

전통한방휴양관광지를 품고 있는 왕산(923m)은 함양에서 출발한 지리산 둘레길이 산청에서 처음 만나는 산. 이 왕산 자락에 한국판 피라미드로 불리는 구형왕의 돌무덤이 있다. 고대 가락국의 마지막 왕이자 김유신 장군의 증조부로 알려진 구형왕은 즉위 11년만인 서기 532년에 국운이 다한 가락국을 신라의 법흥왕에게 넘겨줬다. 그리고 조상을 볼 면목이 없다는 죄책감에 돌무덤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구형왕릉에서 500m 쯤 산을 오르면 구형왕이 잠시 살았다는 수정궁터와 물맛 좋기로 소문난 ‘류의태 약수터’가 나온다.

의성으로 추앙받는 허준이 한때 활동했다고 해서 동의보감의 고장으로 불리는 산청은 지리산에서 채취한 약초와 산나물 음식이 유명하다. 전통한방휴양관광지를 비롯해 산청 곳곳에는 풍을 예방한다는 방풍초, 피를 맑게 해주는 당귀, 관절에 좋다는 엄나무순 등 약초를 재료로 한 음식점이 20여 곳 성업 중이다. 경호강 맑은 물에서 건져 올린 다슬기와 한약재로 요리한 오리백숙도 산청의 별미.

오월의 지리산 계곡은 하루가 다르게 신록으로 물든다. 산청읍내에서 현기증이 날 정도로 구불구불한 밤머리재를 오르면 천왕봉 동쪽 자락의 계곡이 영화 스타워즈의 협곡처럼 펼쳐진다. 남한 최고의 탁족처로 불리는 대원사계곡은 밤머리재를 내려가자마자 만나는 첫 번째 계곡. 대원사계곡의 계곡미는 익히 알려졌지만 이곳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장실과 세상에서 가장 운치 있는 이름의 학교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계곡과 이웃한 대원사 주차장의 화장실이 주인공으로 창밖의 계곡은 한 폭의 풍경화.

커다란 바위 사이로 약초 뿌리를 적신 옥계수가 흐르고 분홍색 수달래가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계곡을 거슬러 오르면 가랑잎 초등학교가 위치한 유평마을이 나온다. 이 학교의 본래 이름은 유평초등학교였으나 취재 왔던 어느 기자가 가랑잎 초등학교라고 부르면서 유명해졌다. 아쉽게도 지금은 폐교돼 학생수련원으로 바뀌었지만 작은 운동장과 대원사계곡의 운치는 여전하다. 가랑잎 초등학교에서 계속 계곡을 거슬러 오르면 하늘 아래 첫 동네인 새재마을. 이곳에서 치밭목대피소를 거쳐 천왕봉까지 8.8㎞로 6시간 정도 걸린다.

남사예담촌 인근의 숯가마는 산청 웰빙 여행의 대명사. 지리산 참나무를 차곡차곡 쌓아 며칠 동안 섭씨 1300도의 고온으로 숯을 구워내면 참숯가마는 서서히 식으면서 불가마가 된다. 벌겋게 익은 숯을 빼낸 뒤 하루쯤 식힌 후 개방되는 고온실은 화상을 방지하기 위해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뜨겁지만 원적외선과 음이온이 강해 땀을 빼고 나면 심신이 개운해진다.

참숯가마에서 노폐물을 빼고 나면 남사예담촌에서 하룻밤 유하면서 산골마을의 정취를 맛보아야 할 차례. 토담과 돌담이 아름다운 남사예담촌은 고즈넉한 담장 너머로 전통 한옥의 단아함과 시골 사람들의 넉넉한 정이 넘쳐흐르는 한옥체험마을로 사양정사를 비롯해 몇 곳의 고가옥에서 민박을 한다.

조선시대에 지어진 사양정사, 최씨고가, 이씨고가 등 양반가는 토담에 둘러싸여 있고, 서민들이 거주하던 민가는 돌담이 감싸고 있다. 토담과 돌담 사이로 난 긴 골목길을 걷다 솟을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조선시대로 시간이동을 하게 된다. 문화재로 지정된 남사마을의 돌담길은 약 3.2km. 회화나무 두 그루가 X자로 굽은 이씨고가 골목길과 길이 ‘ㄱ’자로 꺾이는 최씨고가의 골목길이 운치 있다. X자 모양의 회화나무에 달이 걸리고 들일 나갔던 농부가 긴 그림자를 끌고 골목길로 들어서면 남사예담촌의 하루가 마감된다.

퇴계 이황과 동갑으로 학문과 인품을 겨루던 남명 조식 선생은 여생을 보낼 곳으로 산청을 낙점했다. 합천 삼가현에 살던 남명 선생은 지리산 대원사계곡과 중산리계곡 물줄기가 만나 강폭을 넓히는 산청 덕산을 세 번이나 답사한 후 서실인 산천재를 짓고 뜰에 매화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이유는 하늘과 가까운 지리산 천왕봉이 마음에 들어서였다(只愛天王近帝居).

산청=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