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가꾸니 관악산 숲길 살아났다
입력 2010-05-04 18:30
“숲 속에서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식물의 생태를 잘 알아야 관악산을 잘 가꿀 수 있습니다. 물기가 많은 흙에는 버드나무 종류가 살고, 흙이 거의 없는 바위틈에서는 소나무를 만날 수 있어요.”
지난달 27일 서울 신림2동 관악산 입구 휴게소에서는 ‘2010 관악산 숲가꿈이’ 수업이 한창이었다. 첫 수업은 에코플랜연구센터 김지석 생태학박사가 맡아 ‘숲의 생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숲 가꿈이를 자청하고 나선 자원활동가 7명은 김 박사의 말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눈과 귀를 집중했다.
시민단체 생명의숲국민운동(생명의숲)은 2008년부터 관악산 숲길 가꾸기 운동을 벌여 왔다. 생명의숲은 관악산을 돌보고 가꿀 지역 내 시민활동가인 ‘관악산 숲가꿈이’도 3년째 뽑아 운영했다. 제3기 숲가꿈이로 선발된 이들은 이날을 시작으로 매주 두 차례 관악산에서 현장수업을 받고 있다. 숲가꿈이들은 다음달까지 관악산의 생태, 숲 탐방 문화 등을 교육받은 뒤 관악산을 돌보는 일에 나선다.
연간 700만명에 이를 정도로 많은 등산객이 찾는 관악산은 숲길이 많이 훼손된 상태다. 생명의숲은 도심지의 산들을 홍보하며 숲 탐방 운동을 기획하던 중 관악산의 심각한 환경 파괴에 주목했다.
생명의숲은 관악산 숲길을 일일이 걸으며 실태를 면밀히 조사했다. 조사 결과 관악산 숲길 전체 89㎞ 가운데 66.1%가 훼손된 것으로 드러났다. 등산로가 아닌 샛길을 이용하는 등산객이 많아지면서 산 곳곳이 오물과 버려진 안내물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외래종 식물이 많아졌고, 토양이 유실돼 암반이 드러나면서 통행이 위험해진 곳도 생겼다.
생명의숲은 관악구청과 G마켓의 후원을 받아 숲길 복원 정비 공사를 하고 자원활동가를 양성했다. 탐방객의 보폭에 맞도록 돌계단을 정비하고 배수로를 만들었다. 희귀식물이 사는 곳에는 보호그물을 설치했다. 토양 유실을 막기 위해 등산로 가장자리에 흙막이 시설도 만들었다. 아예 돌계단이 망가진 곳에는 목재데크 계단을 설치했다.
이들의 정성에 조금씩 제 모습을 찾아가는 관악산을 지켜보면서 등산객들도 만족해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관악산을 찾는다는 이훈영(57)씨는 “돌계단이 잘 정비되면서 걷기가 편해졌다”며 “오며 가며 쓰레기라도 주워 (지킴이들을) 도와야겠다”고 말했다. 김명인(49·여)씨는 “숲속도서관이 잘 꾸며져 있던데 아이들을 데리고 한번 오겠다”며 웃었다.
3년째 관악산 숲길을 가꾸고 있는 시민활동가 채정원(34)씨는 “올해에는 관악산의 식생과 숲길 훼손 정도를 구체적인 지도로 그려볼 계획”이라며 “관악산을 시작으로 서울 외곽에 있는 숲길과 산들을 모두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