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이만우] 가계·공기업 부채의 출구

입력 2010-05-04 17:57


부채는 미래에 갚아야 할 부담으로 가계, 기업, 정부 등 경제주체의 성가신 짐이다. 정부가 조세수입을 초과해 재정지출을 집행하면 재정적자 누적액이 정부부채로 쌓이게 된다. 원래 가계에서 소득의 일부를 저축하고 기업이 이를 차입해 이자를 지급하는 것이 자금 흐름의 선순환 구조다. 최근 가계부채 및 정부에 최종 책임이 귀속되는 공기업 부채 증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데 이는 기업 투자 위축으로 인한 자금 흐름 왜곡으로 생기는 문제다.

기업 부채를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지목한 김대중 정부는 1997년 말 518%였던 대기업 부채비율을 1999년 말까지 200%로 감축하도록 들볶았다. 당시 기업의 부채비율이 높았던 이유는 주식시장의 후진성으로 인해 예금이 은행에 쏠렸고 은행이 기업에 대출 형식으로 자금을 공급했기 때문이었다. 높은 부채비율은 기업주의 욕심보다는 금융시장 미성숙이 원인이었는데 당시 집권세력은 이를 기업 들볶기 재료로 활용했다.

기업부채 감축정책 부작용 커

대기업은 계열사가 돌아가며 증자에 참여하는 순환출자를 통해 부채 총액은 그대로 두고 부채비율을 낮추는 꼼수를 찾아냈고 그 결과 순환출자라는 새로운 병리현상이 등장했다. 부채비율 감축이 감독지침으로 확정되자 대기업 대출이 막힌 은행은 잉여자금으로 골치를 앓게 됐다.

국책은행과 대형 은행이 자금운용 수단으로 카드채를 대량 매입했고 손쉽게 자금을 확보한 신용카드사들이 경쟁적으로 현금서비스 확대에 나섰다. 정부가 갑자기 채권추심 규제를 강화하면서 대손율이 급증했고 결국 카드대란을 맞게 됐다. 카드사의 손실은 계열 은행이나 금융사가 떠안게 됐고 LG카드는 알토란 같은 LG증권까지 넘겨주는 대가를 치렀다.

외국계로 주인을 바꾼 SC제일은행과 한국씨티은행은 주택담보 가계대출에 주력하는 영업 전략을 구상했고, 아파트 가격이 들썩거리자 은행 대출로 집을 사는 서민층이 급증해 가계부채가 새로운 불씨로 등장했다. 서민층의 과도한 원리금 상환 부담은 소비를 위축시켜 경기 회복의 장애가 되고 있다. 은행 대출은 확정부채인데 비해 주택은 가격 변동에 노출된 불안전 자산이기 때문에 주택 가격 하락시 가계파산 사태가 우려된다.

주택 구입에 따른 과도한 가계부채는 기업의 임대주택 사업 확대로 해소해야 한다. 금융기관이 펀드를 조성해 미분양 아파트도 구입하고 건설사를 사업자로 참여시켜 편의지역에 임대주택을 건축해 운영하면서 임대이익과 양도차익은 투자자에게 배분하는 방식을 설계해야 한다. 임대주택 사업을 영위하는 펀드에 대해 양도차익 과세이연 등의 세제 지원을 적절히 활용하면 저금리 시대의 새로운 투자 기회가 될 수 있다.

최근 공기업 부채 급증은 토지주택공사와 수자원공사가 정부 사업을 대신 수행한 결과다. 토지주택공사의 주택사업 부분은 민간기업 펀드에 맡기고 수자원공사의 4대강 사업은 정부 예산으로 마무리해야 한다. 공기업 부채는 대응자산이 있고 국제 기준상 국가부채에 속하지 않는다며 어물거릴 일이 아니다.

기업투자로 선순환 회복해야

안정적 이익을 얻고 있는 공기업은 관련 정부부채를 인수시킨 다음 민영화를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 인천공항철도와 공항고속도로는 매년 수천억원에 이르는 손실을 정부가 보전하고 있는데 이는 수혜 대상인 인천공항공사 부담으로 이양하는 것이 올바른 해법이다. 공항교통수단을 공항공사가 관리하는 것이 책임경영 차원에서도 효율적이며 민영화시 주식 헐값 매각 논란도 줄일 수 있다. 현재 코레일이 운영하면서 관련 손실은 경영평가에서 제외시키고 있는데 이와 같은 변칙 처리로는 무책임 경영에 따른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없다.

우량 대기업은 거액의 여유자금을 예금으로 묶어놓고 은행은 가계대출에 주력하는 비정상적 자금 순환은 교정돼야 한다. 가계와 공기업 부채는 줄이고 일자리 창출 주역인 기업이 경제의 중심에 서서 저축된 자금을 장기적 투자재원으로 주도적으로 활용하는 선순환 구조를 속히 회복시켜야 한다.



이만우(고려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