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연숙] 지금 이 순간, 그대로
입력 2010-05-04 17:57
일요일 정오, 날씨가 좋다. 기분 좋은 상쾌함에 취할 겨를 없이 자유로를 타고 사무실로 향했다. 길가에 늘어선 벚나무 꽃잎이 차창에 날리고 새들은 몸을 낮게 숙이고 창공을 가로지른다. 파주는 유독 겨울이 길어서 봄이 늦게 오고 짧은 편이다. 게다가 올해는 유난히 눈도 많고 추워 더욱 간절하게 봄을 기다렸다. 그렇기에 화창한 날씨에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사무실로 가는 길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시선은 차창 밖으로 펼쳐진 임진강을 힐끔거리지만 머릿속에는 이미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일들로 가득하다. 상설전시장은 일정대로 어린이날에 개관하는데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겠지? 앞으로 어떻게 운영할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회사 근처다. 색색의 봄옷을 입은 사람들이 지나쳐 간다.
결국 도저히 봄을 외면할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을 때 내 손은 벌써 후배의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다. 내 것까지 정성스레 도시락을 준비한 후배를 데리고 회사 뒤편에 있는 산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물기를 머금은 듯 빛을 발하는 나뭇잎과 바람 냄새에 마음을 빼앗기며 잠시 잡다한 일들을 뒤로 미뤘다. 그 순간은 휴식에만 충실해야 한다는 각오 아닌 각오를 하고 산에서의 점심을 마쳤다. 단지 몇 분, 몇 초라도 젊을 때 좀 더 여유를 부리고 싶은 마음 또한 없지 않았다.
어린이날이다. 해마다 어린이날 언저리에 시작하는 어린이 행사에 전국에서 많은 가족과 연인들이 출판도시를 찾는다. 많은 경우는 책마을에서 자연을 배경으로 책을 보고 느끼기 위해 이곳을 찾지만 적지 않은 경우가 나름의 이벤트를 위해서 방문하기도 한다.
행사 주최자로서 고민은 해마다 이번 행사에는 이들에게 무엇을 보여줄까, 무엇으로 소통할까 하는 것이다. 몇 년이 지나도 이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자연스런 모습을 최대한 보여주는 것, 여기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을 찾아 주는 것이 관건이다. 내심 바라는 것이 있다면 오는 이들이 출판도시를 진정으로 보고 느끼는 것이다.
아파트가 빼곡한 도시에 지쳤다면, 이곳에서는 갈대 샛강을 따라 걸으며 자연을 느끼길 바란다. 책을 느끼기 위해서라면 마음껏 책을 느끼길 기대한다. 있는 그대로, 그리고 순간을 느끼는 여유를 만끽하면 더할 나위 없겠다.
며칠 전 한 시상식에서의 수상자, 나의 지인이기도 한 그의 소감이 인상적이었다. 정확하게 옮기기는 어렵지만 이런 내용이었다. “20대에는 방황하고, 30대에는 고뇌와 번뇌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40대에는 뭔가 하는 것 같은데 벌써 40대 끝자락에 와 있더라.” 요즘 따라 시간이 빠르다고 느끼던 차에 느낌이 있는 이야기로 다가왔다. 앞으로 많이 번뇌하고 고민하겠지만 30대의 봄날, 지금 이대로 느끼고 싶다.
김연숙 출판도시문화재단 기획홍보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