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것이 보여” 정신질환자 행세… ‘빗나간 비보이’ 軍면제 적발
입력 2010-05-04 00:22
수년간 국제 비보이(B-boy) 대회를 석권한 유명 브레이크 댄스 팀을 이끈 황모(30)씨는 2001년 8월 어머니와 서울 둔촌동 한 병원을 찾았다.
황씨 어머니는 담당 의사에게 “오래 전부터 우울증을 앓던 아들이 요즘 헛것이 보인다며 집에만 있다”고 말했다. 의사의 질문을 받은 황씨도 먼 곳만 응시하는 등 정신질환자 행세를 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았다.
이후 한 달간 입원 치료를 받은 황씨는 병역처분 변경절차를 거쳐 2003년 11월 징병신체검사 결과 5급 판정을 받아 군 면제자가 됐다. 1998년 신체검사에선 1급 현역 입대 판정을 받았지만 진단서를 제출하자 결과가 뒤집힌 것이다.
같은 팀 후배 박모(29)씨도 선배 비보이들이 정신질환 진단을 받아 군 면제 판정을 받은 것으로 보고 이 수법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는 2002년 서점에서 의학전문서적을 보며 익힌 정신질환 증세를 의사 앞에서 연기한 끝에 진단서를 받아 군 면제 판정을 받았다. 3년 전에는 3급 현역 입영 대상이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2002년 5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병원 8곳에서 받은 가짜 정신질환 진단서를 병무청에 제출해 병역을 면제받은 혐의(병역법 위반)로 황씨 등 같은 팀 비보이 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3일 밝혔다. 이들은 당초 신체검사에서 입영 대상인 1∼3급 또는 재검 대상인 7급 판정을 받았지만 가족까지 동원해 정신질환자인 것처럼 꾸며 군 입대를 피했다. 일부 팀원은 정신과 진료를 받는 기간에 외국 비보이 대회에 나가 상을 받기도 했다.
공소시효 7년이 지나지 않은 이모(25)씨 등 3명은 재판에 넘겨져 5년 이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공소시효가 지난 6명은 형사처벌을 피했지만 병무청은 9명 모두 재검을 통해 병역 의무를 이행하게 할 예정이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