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오프제’ 현장서 통할까… 대기업 노조 조합비 인상땐 효과 줄어
입력 2010-05-03 18:30
노동조합의 조합원 규모별 근로시간면제 한도가 1일 새벽 결정됐지만 큰 영향을 받는 대기업 현장에서 전임자가 사용자로부터 임금을 받는 후진적 관행이 얼마나 개혁될 수 있을까. 종전에는 학자들 사이에 비관론이 적지 않았지만, 낙관적 전망도 만만치 않다.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근면위)가 유급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를 정하면서 중점을 둔 것 가운데 하나가 중소기업 노조에 대한 배려와 대기업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다. 대기업 노조들은 조직의 사활까지 걱정하지 않고도 유급 전임자 축소에 대응할 방법이 있다고 근면위 공익위원들은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전임자 수를 대폭 줄여야 하는 조합원 1000명 이상 대기업 노조들은 대략 서너 가지 대응책을 강구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조합비 지출구조를 건전화하거나 조합비를 인상하는 방안을 들 수 있다. 대기업 노조의 경우 조합비에서 인건비 비중이 2.7%에 불과하므로 불요불급한 행사비 등을 대폭 줄이면 상당한 규모의 인건비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실제로 현대중공업 노조는 최근 조합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타임오프제 도입에 대비해 조합비를 30% 이상 올릴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1441명 가운데 76.9%가 현재 기본급의 0.9%인 조합비를 0.3∼0.5% 포인트 인상하는 방안에 찬성했다.
대기업 노조들은 타임오프 한도의 예외규정을 적극 활용할 수도 있다. 산업안전법이나 근로자경영참여법 등에 규정된 노사공동업무의 경우 타임오프 한도 외에 노사가 단체협약으로 별도의 유급노조활동시간을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노사간 갈등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노사간 이면 합의로 법규정보다 더 많은 전임자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가장 경계해야 할 불법행위다. 임태희 노동부 장관은 3일 기자간담회에서 “7월 이후 공공기관과 대기업을 대상으로 법 위반사항을 집중 점검해 불법적 급여 지급에 대해서는 (사용자를) 부당노동행위로 반드시 처벌하겠다”고 말했다.
상당수 노동법학자들은 노사 어느 한쪽의 고소·고발이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데 고소·고발이 가능하겠느냐는 이유를 들어 사용자의 임금지급을 법으로 금지하는 게 법리상으로 맞지 않고, 국제 기준에도 부합되지 않는다고 지적해 왔다. 이철수 서울대 법학전문대 교수는 전임자 임금지급에 대한 처벌조항은 “사용자가 (전임자 불법 임금지급은) 다 내 잘못이니 나를 매우 쳐 달라”고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근면위의 한 공익위원은 “특별히 재정비리가 드러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부가 (이면합의에 의한 임금지급 관련) 자료를 노사에 요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면서 “결국 노사가 복수노조의 견제 등과 같은 자정기능을 통해 타임오프제를 정착하도록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임 장관은 10년 전부터 꾸준히 노조전임자를 줄인 한 공기업의 사례를 소개했다. 이 공기업은 1996년 77명이던 전임자 수를 현재 19명까지 줄였다. 근면위의 타임오프 한도인 2만8000시간(14명)보다 조금 더 많은 수준이다. 또한 10대 그룹에 속하는 한 대기업 계열사는 타임오프 한도가 14명인데 현재 전임자 수는 13명에 불과하다. 임 장관은 “대기업들에 더 느슨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이런 노조들과의 형평성 때문에 곤란하다”고 말했다.
임항 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