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만원짜리 ‘덥석’… 백화점 큰손 중국인
입력 2010-05-03 21:45
中노동절 맞아 대규모 입국… 깐깐한 일본인과 대조적
지난달 30일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중국 노동절 연휴(1∼3일)를 맞아 중국 선양에서 온 40대 남자가 이 백화점을 찾았다. 중국어 통역을 함께 맡고 있는 손혜원 주임은 명품 ‘브레게’ 시계를 찾는다는 이 남자를 매장으로 안내했다. 수수한 옷차림에 구경만 하고 가려니 했다. 그러나 이 남자는 4500만원짜리 시계와 2500만원짜리 시계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5분 만에 2500만원짜리 시계를 구입했다.
손 주임은 “우리나라 VIP도 명품 시계를 고를 땐 보통 두세 번 방문해 결정하는데 수천만원짜리 시계를 5분 만에 구입하는 것을 보고 모두 혀를 내둘렀다”고 전했다. 이른바 ‘번개쇼핑’이다.
올 들어 엔화약세 등으로 일본인 매출 비중이 줄어든 반면 중국인은 유통업계에서 ‘큰손’으로 부상했다. 일본 골든위크(4월 29일∼5월 5일)와 중국 노동절 연휴를 맞아 한국을 대거 방문한 일본인과 중국인의 씀씀이에서도 이 같은 차이가 드러난다.
롯데백화점 본점은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2일까지 일본인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0%가량 줄어든 반면 중국인 매출은 40%가량 늘었다고 3일 밝혔다. 1인당 평균 구매금액은 80만∼100만원으로 비슷하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일본인이 명품을 주로 사는 데 반해 중국인은 40% 이상이 여성 캐주얼 의류를 산다”며 “평균 구매금액이 비슷하다는 것은 그만큼 중국인이 이것저것 많이 산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이 지난달 12일부터 28일까지 본점 내 세금환급 코너를 이용한 중국 관광객 14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30대 직장 여성이 가장 많았다.
현대백화점의 경우 중국인이 가장 많이 쓰는 중국은행연합카드로 결제한 금액을 분석한 결과 지난달 1인당 평균 구매금액은 47만원이었으나 이달 들어 3일 오후 1시 현재 109만원으로 2배 이상 높아졌다. 신세계백화점도 1분기 중국인 매출 비중이 67%로 33%인 일본인 비중을 앞질렀다.
백화점 컨시어즈(고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도와주는 전문가)나 중국인 통역담당자의 말을 들어보면 중국인은 ‘과시욕’이 강하다. 시계, 보석매장을 안내하면서 “비싼데 괜찮으세요?”라고 물으면 “오늘 살 물건이 많다”며 오히려 뿌듯해한다는 게 이들의 전언이다. 구매할 때도 계산기를 두드리며 이리저리 재보는 일본인과 달리 거액의 상품도 망설임 없이 사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중국인은 귀국선물용으로 한국 대표 화장품 브랜드 ‘설화수’의 10만원대 기초화장품 5∼10세트를 대량 구입하기도 한다.
일본인이 발렌시아가, 보테가베네타 등 희소성 있는 자기만의 명품을 많이 찾는 반면 중국인은 여전히 가격불문하고 샤넬, 루이뷔통, 에르메스 등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명품 브랜드를 선호하는 것도 특징이다. 중국인은 또 한류 영향으로 순혈 ‘메이드인코리아’(한국산) 의류 브랜드를 좋아한다고 백화점 관계자들은 전한다.
최근 중국 쇼핑객의 또 다른 특징은 서울 압구정동, 청담동 등 강남지역 피부과, 성형외과 등에서 미용시술을 받고 선글라스, 스카프, 고가 기능성 화장품을 찾는 ‘클리닉족’.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지난해 혼자 와서 피부 레이저시술을 받고 갔던 엄마가 올해는 딸을 데리고 와서 같이 미용시술을 받은 뒤 선글라스와 스카프, 기능성 화장품을 사갔다”고 전했다.
이명희 기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