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손수호] 해치가 정말 귀엽나

입력 2010-05-03 22:21


“징그럽고 미신적 의미로 가득한 캐릭터… 서울시민은 민망하고 괴롭다”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들 간에 토론이 벌어졌을 때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이 오세훈 시장의 디자인 정책이다. 디자인이라는 이름의 겉치레 행정에 돈을 쏟아 부었다는 것이다. 이 중 기억나는 멘트는 “오 시장을 놓고 미화부장을 뽑았느냐는 지적이 나온다”는 원희룡 후보의 발언이었다. 오 시장의 디자인 정책은 그의 웰빙 이미지와 겹쳐져 더 많은 매를 맞았다.

그렇다고 ‘미화부장’은 지나치다. 교실 꾸미는 데 관심이 많은 반장 정도면 모를까. 사실 서울이라는 도시는 디자인 세례를 받을 때가 됐다. 유교적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건설된 수도 서울은 일제 강점기에 근본이 훼손됐고, 한국전쟁과 근대화를 거치면서 고도(古都)의 정체성을 잃어버렸기에 그러했다. 독일의 미래학자 호르크스의 말대로 디자인은 단순히 사물의 외관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의력을 만드는 미래의 열쇠인 것이다.

그러면 의욕적으로 출발한 오세훈의 디자인 정책이 왜 동네북 신세가 됐을까. 세계디자인수도니, 한강르네상스니 해서 좀 내세운 것은 행정가로서 당연하다. 다만 디자인의 바탕이 되는 사유(思惟)가 부족한 게 흠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보듯 기껏 광장을 만들어 놓고 죽어라 꽃을 심는 것은 심리적 결손에서 비롯된 초조함이 아닌가 싶다.

서울의 문화자산 가운데 지켜야 할 것과 새로운 것의 조화를 이루지 못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동대문운동장이라는 소중한 집단기억의 장소를 부수고 서방 건축가의 이름으로 디자인 파크를 짓는 일이 대표적이다. 이 한방에 역사문화도시 서울의 콘셉트는 공중분해됐다.

이 정도만 해도 철학에 대해 공방을 벌일 수 있지만 서울의 상징이라는 해치에 이르러서는 교양과 안목의 수준으로 전락한다. 처음엔 미약하였으나 지금은 이 놈이 시내 곳곳에서 강력한 심벌로 군림하고 있다. 강변에 나가도, 어린이대공원에 가도, 택시를 타도 이 놈이 입을 “헤∼” 벌리고 있다. 이 캐릭터가 정말 귀여운가. 해치에 대한 나의 부정적 인식이 편견인가 싶어 주변에 물어봐도 지금껏 호의를 보인 사람은 없었다. 이마 앞 곱슬머리에다 입은 과장되게 크고 입속의 혀는 왜 그리 넓은지. 코는 둥글납작하고, 목에는 징그럽게 방울을 달았으며, 배는 병에 걸린 어린이 마냥 통통하다. 누런 색깔은 서울의 은행노란색을 입혔다고 하는데, 파란색의 해치 BI(Brand Identity)와 딴판으로 놀고 있다.

메시지도 문제다. 서울시 자료를 보면 해치는 옳고 그름, 착함과 악함을 판단할 줄 아는 상상의 동물,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는 신령스런 동물, 행운과 기쁨을 가져다주는 존재라고 설명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스토리 텔링도 유분수지, 중국 문헌에 나오는 이야기를 서울 상징물의 설명으로 쓸 일은 아니다. 과학적 역사적 문학적 근거도 없으니 미신적 요소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사정이 이러함에도 서울시는 무엇에 씌었는지 해치에 예산을 퍼붓고 있다. 330여종의 다양한 문서에 해치 문양을 표시하고 있는 것은 기본이고 올해는 해치 조형물 제작에 8억원을 쓴다고 한다. 시는 당초 한강에 해치 부표(浮漂)를 띄우고 크리스털 해치도 세우는 등 해치 조형물에 20억원 가량을 쓰려다 여론을 의식해 예산을 줄인 모양이다.

서울시는 아직도 관이 밀어 붙이면 민이 따를 것으로 여기는 걸까. 시민들이 좋아하지 않는 데도 곳곳에 세워놓으면 상징물이 된다고 생각할까. 청계천 관광안내소에도 사정 모르는 외국인만 하루 한 두개 사갈 뿐 내국인은 철저히 외면한다고 한다. 스스로 사랑하지 않는 캐릭터를 외국인이 사랑하도록 바라는 것은 무리다. 누가 시장이 되든 해치는 전설 속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디자인 정책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일이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