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동재] 늪에 빠진 태국 관광

입력 2010-05-03 17:49


“대규모 경기 부양 정책과 이로 인한 소비 증가, 그리고 세계 경기 회복에 힘입어 내년에는 3.5% 이상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12월 29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태국 정부의 사티 룽카시리 예산정책실장이 이 같은 희망 섞인 경제 전망을 내놓았다고 전했다. 같은 날 프라킷 치나몬퐁 호텔협회(THA) 회장도 현지 일간 더 네이션과의 인터뷰에서 “세계 경제가 좋아지고 있기 때문에 관광업계도 내년에 15∼20% 정도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는 낙관적 견해를 나타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날 한결같이 “최대의 복병이자 걸림돌은 정정 불안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라는 걱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제발) 정치가 안정되길 바란다”는 희망사항을 피력했다. 태국 경제는 올 초까지만 해도 소비자 신뢰지수가 1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장래 고용에 대한 신뢰지수가 급등하는 등 뚜렷한 성장세를 보였다. 소비 심리를 회복한 국민들도 주택과 차량을 구입하고 국내외 여행에 나서는 등 순탄한 행보는 계속됐다. 자신감을 얻은 정부는 지난 3월 올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다시 상향 조정했다. 지난해 말에 예측했던 3.5%에서 4.5%로 목표치를 올려 잡겠다는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모처럼 찾아온 경기 회복의 기회는 잠복해 있던 악재가 분출되면서 허망하게 사라질 판이다. 지난 3월 14일 탁신 치나왓 전 총리를 지지하는 세력인 UDD(The National United Front of Democracy Against Dictatorship·독재저항민주주의연합전선)의 반정부 시위가 시작되면서부터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붉은 색 상의를 입기 때문에 AP와 AFP 등 주요 외신들이 ‘레드셔츠’라고 부르는 이들은 ‘정권 타도’를 외치며 시위에 나섰다. 국내 정치 상황이 악화되지 않기를 바랐던 사티 예산정책실장과 프라킷 회장의 간절한 소망은 현재로선 산산조각 난 상태다.

양측이 자제하며 보여줬던 평화적인 모습은 시한부로 끝났고 갈수록 공방이 격렬해지면서 유혈사태가 반복되고 있다. 지난달 10일에는 정부군과 시위대가 정면 충돌, 25명이 숨지고 900여명이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다음날인 11일 우리 외교부는 태국 수도 방콕시에 대한 여행 경보를 기존의 1단계(여행 유의)에서 2단계(여행 자제)로 한 단계 상향조정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다른 국가들도 유사한 조치를 취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태국 현지 언론들은 “전 세계에서 40개국 이상이 자국민의 태국 여행을 만류하고 있고 앞으로도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일각에서는 ‘태국의 정치시스템 기능 상실로 인한 내전 상황이 우려된다’는 관측까지 나왔을 정도다.

정부군과 시위대의 날선 대치가 50일을 넘기면서 태국의 GDP에서 적잖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관광 산업은 심대한 타격을 받고 있다. 방콕 포스트는 1일 태국관광청(TAT) 자료를 인용, 2008년 같은 기간(세계 경제가 위기에 빠졌던 2009년은 제외)에 비해 관광수입이 무려 75억바트(약 2600억원)나 줄어들었다고 보도했다. 특히 시위가 본격화된 지난 4월의 경우 방콕과 푸껫 등 유명관광지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가 무려 21%나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지난 3월의 감소폭은 4.6%에 불과했다. 극한으로 치닫는 자중지란(自中之亂)이 자초한 불행한 결과물을 명확하게 수치로 제시해 준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국 정부는 “강경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으름장을 놓기에만 바쁠 뿐이다. 시위대는 “끝까지 해보자”며 맞대응하겠다는 태세다. 이런 지경이니 설사 시위가 진압된다 하더라도 태국이 안정을 되찾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집안 살림살이조차 내팽개친 채 정쟁에 골몰하는 그네들의 행태는 볼썽사납기만 하다.

새삼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옛 말의 의미를 곰곰이 되새겨 보게 되는 까닭이다.

이동재 선임기자 dj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