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문일] 피바다 가극단이 홍루몽 공연?

입력 2010-05-03 17:48

일부 언론이 가뭄에 비 기다리듯 하던 김정일 방중이 드디어 실현됐다. 6·25전쟁 60주년을 맞는 올해 중국과 북한 사이에 각별한 기념 이벤트가 없을 수 없다. 중국의 지원을 받아 명맥을 유지한 북한이 중국에 감사를 표시하는 형식이 되리라는 것도 예상됐다. 시기는 당연히 6월 25일 이전이다. 이런 이유로 일부 언론은 중국 단둥에 상주하면서 김정일 방중 열차를 기다렸다. 수교 60주년인 지난해 중국 후진타오 주석은 왕자루이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보내 초청했으나 김정일 방중은 이뤄지지 않았다.

2일 오후 4시 압록강철교를 건넌 특별열차가 단둥역에 들어섰다. 열차에는 198명의 피바다가극단원이 타고 있었다. 이들이 단둥역에서 약 20분 동안 입국수속을 밟는 동안 한국에서는 ‘정부 핵심 관계자’를 인용한 ‘김정일 방중 임박’ 보도가 나왔다.

피바다가극단은 6∼9일 베이징의 BTV대극원(大劇院)에서 대형 가무극 ‘홍루몽(紅樓夢)’을 공연한다. 중국 4대 기서(奇書) 중 으뜸으로 꼽히는 게 홍루몽이다. ‘우리식’을 앞세우는 북한이 ‘중국식’ 가극을 들고 중국에 가는 것은 대단한 겸손이다. 중국 언론은 ‘혈해(血海)가극단의 홍루몽 공연’을 흐뭇한 뉴스로 다루고 있다.

중국은 명나라 귀족 집안의 화려한 생활과 희비(喜悲)를 묘사한 이 소설이 봉건주의에 반대해야 하는 이유를 밝혀준다고 가르쳐왔다. 그러나 실제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금릉십이채(金陵十二釵)로 불리는 미녀들의 염정(艶情)이다.

김일성은 1961년 중국 방문 때 홍루몽 공연을 보고 나서 같은 해 공연단을 북한에 초청할 정도로 반했다. 홍루몽을 조선식으로 만들어보라는 김일성 지시에 따라 60년대부터 무대에 올렸지만 내놓고 자랑하지는 못했다. 지난해 규모를 키우라는 김정일 지시에 따라 6막 10장으로 최종 완성돼 10월 첫 공연을 했다.

그 후 북한 주민 10만명이 홍루몽을 관람할 정도로 붐이 일어났다고 하는데 실은 그 전에 중국 드라마 홍루몽이 북한에서 방영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가극 홍루몽도 이 드라마를 많이 참고했으며, 중국 연출자를 초청해 지도를 받고 의복과 소도구까지 중국에서 보내주었다고 한다.

홍루몽은 베이징 공연 뒤 한 달간 중국 각지를 순회 공연한다. 일반인 관람료는 1280위안(약 21만원)에서 180위안(약 3만원). 김정일과 후진타오는 북한이 만든 중국 홍루몽을 VIP석에 나란히 앉아 관람하는 것으로 우의를 상징할 가능성이 크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