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환의 성경과 인체(14)
입력 2010-05-03 10:36
믿음만으로 구원?
체질의학을 연구하고 임상에서 치료에 임해보면 인간은 동물과 달리 육체라는 껍질 속에 영혼을 담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 감탄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 껍질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내면의 본질은 가벼이 여깁니다. 현재의 모든 교육과 제도, 사회적 분위기가 그렇습니다. 심지어는 과학과 의학도 그렇습니다. 의학에서조차 검사에 나타나지 않는,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증상은 질병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검사에는 큰 이상이 없지만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고 체질을 연구하는 한의사들은 이런 질환에 오늘도 싸우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당도하리라는 성경 글자의 의미에 기쁨을 누려온 결과 아직도 메시아를 기다리며 그들의 선민사상에 도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쁨은 장차 올 메시아가 그들을 일으켜 세워 빼어난 국가로, 그들에게 부와 명예와 권력을 이 세상에서 누리게 해 줄 것이라는 껍데기의 기쁨인 것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께서 그들 앞에 당도해서 그들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삶에 관한 방법을 실제로 보여주었을 때, 그들은 입맛이 씁쓸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선포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세계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불행히도 오늘날 이와 유사한 상황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믿음만 있으면 구원받지 실천 등 다른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이론이 이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야고보가 말한 행위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란 말과 정면으로 상치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의 경우 자기 심정과 자신의 삶의 품질이나 인간 내면의 실제 인격은 구원과 무관한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경우에 어떤 이는 자신의 악한 삶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피 공로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의를 자신들에게 전가할 것이라고 믿고 기뻐합니다. 이것은 입에는 달지만 속에서는 쓰다는 것을 모르는 이치와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성경의 내적 의미가 있는 영적 진리가 가르쳐질 때, 구원은 믿음 하나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이성 속의 믿음과 그리고 의지 즉 삶 속에서 녹아 있는 사랑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할 때 이와 같은 진리는 매우 쓰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이러한 영적 원리가 구원은 쉽게 된다는 이론을 거두어 가기 때문이고 그럼과 동시에 그들에게 신성한 계명을 순종하고 악에서 나오는 계속적이고 철저한 노력의 이웃 사랑의 삶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의를 사람에게 전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람들에게 그분의 의를 나누어 주시되 각자가 자기들의 실제 삶에서 의롭지 못한 것을 중단한 만큼에서, 그리고 신성한 법도에 따라 살아간 만큼 나누어 주신다는 것이 명백한 진리입니다. 실제의 삶에서 거듭나는 고통 없이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이러한 진리는 더할 나위 없이 쓰고 쓸 것입니다.
기독교 사상은 근 2000년 동안 세계를 가르쳐왔습니다. 오늘 날에도 기독교는 세계를 이끄는 선진국에서 우세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이 세상 어디에도 기독교인이라는 증명서가 각 개인의 선한 인격을 보증한다거나, 거듭나는 삶의 동료라는 보증은 아닌 것입니다. 만일 그런 곳이 있다면 그것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삶과 영에 실제적 관련을 맺지 않는 구원의 이론에만 만족하고 기뻐하는 장소와 모임일 뿐인 것입니다.
서울 방배동 강남의림한방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