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가 써준 찬양 휘호 편액 ‘恩光衍世’ 후손이 제주에 기증

입력 2010-05-02 23:32

“김만덕 할머니는 우리 집안의 할머니이자 제주도민의 할머니입니다. 그의 소중한 정신이 제주에서 널리 퍼져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편액을 기증하게 됐습니다.”

가보로 소장해 오던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친필 편액을 김만덕기념사업회에 기증한 김균(79·경남 마산)씨는 “할머니의 고향 제주에 있어야 보물이 제대로 가치를 갖게 될 것”이라며 “할머니도 지하에서 잘했다고 칭찬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만덕(1739∼1812) 가문의 6대손인 김씨는 1일 제주시 사라봉 모충사 김만덕 추모탑 앞에서 열린 기증식에서 편액을 기증했다. 편액은 이에 따라 170여년 만에 제주로 돌아왔다. ‘恩光衍世(은광연세·은혜의 빛이 온 세상에 퍼진다는 뜻)’라고 쓰인 편액은 조선 후기의 대표 서예가인 추사가 제주에 유배 왔다가 굶주린 도민을 구한 여성 상인 김만덕의 선행에 감동해 그 가문의 3대손인 김종주에게 써준 휘호를 각으로 새겨 만든 것이다. 김종주는 김만덕 오빠의 3대손으로 김만덕의 양아들이 된 인물이다. 김만덕은 조선 정조 때 흉년으로 제주 백성이 굶어죽을 위기에 처하자 장사로 벌어들인 사재를 털어 구휼한 거상이다.

목조로 된 가로 98㎝, 세로 31㎝ 크기의 이 편액은 이후 5대손인 김동인씨가 제주에 있는 이종사촌에게 맡겼다가 1955년 김씨가 인수받아 지금까지 보관해 왔다. 기증식에서 KBS 프로그램 ‘진품명품’의 전문 감정위원인 양의숙씨는 “편액 재질은 제주 왕벚나무로 만들어졌다”며 “제주와 관련된 추사 작품 중에서는 최고이자 가장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가보로 혼자만 갖고 있기엔 솔직히 부담스러웠다”며 “제주에는 좋은 일을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고, 드라마 방영 등으로 만덕 할머니가 알려지고 있어 기증 시기가 됐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어떤 이유에선가 편액이 일본인 수집가에 넘어간 것을 거금을 주고 되찾아 왔다는 이야기를 어머니로부터 들었다”고 밝혔다. 김씨는 “눈뜨면 보고 자기 전에 봤던 편액이 막상 떠난다니 섭섭하지만, 할머니의 뜻을 많은 사람이 이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김씨의 큰딸 소라(49·서울)씨는 “아버지는 50년 넘게 편액을 안방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놓고 행여 먼지가 앉을까봐 아침저녁으로 닦아왔다”며 “지난해 나눔쌀 만섬 쌓기를 보면서 기증 결심을 굳히신 것 같다”고 말했다.

김만덕기념사업회는 편액을 국립제주박물관에 기탁했다가 김만덕기념관이 설립될 경우 전시시설에 보관할 예정이다.

제주=주미령 기자 lalij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