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말기암 시한부 삶 선고받은 어머니 역 배우 정애리

입력 2010-05-02 17:44


연극이 끝난 직후 무대 의상 그대로 분장을 지우지 않은 상태의 배우는 어떤 심리적 징후를 보일까. 배역에 대한 몰입과 일상성의 연관 관계가 궁금했다.

지난 28일 서울 대학로 문화공간 ‘이다 1관’ 객석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공연을 막 끝낸 배우 정애리(50)와 마주 앉았다. 1시간40분의 공연 시간 내내 눈물을 흘리고 슬픔을 표현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칠 법도 했지만 그는 금방 자신의 모습을 찾았다. 그는 “노희경 작가의 작품이라 잘 알려져 있어 조심스럽고 더 잘해야 하는 거 같다. 기도하면서 하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정애리가 연기하는 김인희는 전형적인 어머니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지극히 모시고, 무뚝뚝한 남편, 말문을 닫고 지내는 아들과 딸, 망나니 같은 동생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인희는 불평 한마디 안 하고 모든 상황에서 희생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자궁암 말기 판정과 한 달 남짓한 시한부 선고뿐이다. 한 평생 남을 위해 희생한 것이 측은할 법도 한데 그는 다른 의견을 내놨다.

“희생한 건 맞죠. 하지만 억지로 한 게 아니면 본인에게도 기쁨이 아닐까요? 남을 위해 살았지만 거기가 자기 자리라고 생각했으니 좋았고 즐거웠다고 생각해요.”

그는 인희를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었다. 극중에서는 인희가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자신의 죽음에 대해 크게 슬퍼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떠난 뒤 남겨질 사람들을 걱정한다. 정애리는 “죽음을 맞이하는 건 큰 이사를 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면서 “극중에서는 남겨지는 사람들과 충분히 사랑을 표현하고 이별을 맞이한다. 그래서 아름다운 이별이라고 표현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애리는 인희보다 행복하다고 웃음 지었다. “저, 식구들한테 잘 해요. 식구들도 저한테 잘하고요. 연극에서처럼 무관심하고 그렇지 않아요. 감사하게 저는 건강하다는 것도 다른 점이네요. 올해 고2인 딸은 ‘엄마 연기 너무 잘한다. 너무 존경스럽다’고 말해줬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특별한 이야기를 새로 풀어내지는 않는다. 죽음을 앞둔 엄마와 가족의 이야기는 영화, 연극, 소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비슷하게 반복되곤 했다. 정애리는 “사람들은 작거나 크거나 외부에서 충격이 와야 생각이란 걸 하게 되는 거 같다”면서 “연극을 보고 관객이 자신의 엄마와 가족에 대해 어떻게 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말했다.

이 연극에서 정애리의 연기는 상당히 절제돼 있다. 슬픔을 밖으로 분출하지 않고 차분하게 극을 이끄는 그의 연기는 오히려 슬픔을 배가시키는 이유가 된다. 주로 TV에서 활동한 그는 무대와 카메라 앞이라는 매체 차이를 잘 극복하고 신뢰가는 연기를 보여준다. 현재 MBC 주말연속극 ‘민들레 가족’과 기독교TV ‘내가 매일 기쁘게’ 등 바쁜 방송활동 중에도 정애리는 연극 연습에 철저히 임해왔다. “무대가 배우에게 주는 장점이 있어요. 긴 시간 연습하면 솔직히 지겹고 질릴 때도 있어요. 연습 때 오는 게 힘들고 안 해도 사실 별로 표시도 안 나지만 그걸 이겨내고 해나가는 것도 배우가 할 일인 거 같습니다.” 공연은 7월 18일까지 계속된다(02-766-6007).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