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무대 올려진 ‘미스 사이공’… 더 촘촘해진 짜임새 더 노련해진 연기
입력 2010-05-02 17:44
4년 만에 다시 올려진 뮤지컬 ‘미스 사이공’은 모든 면에서 평균 이상이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사이공 뒷골목을 재현한 무대 세트를 비롯해 무대 전환도 효과적이었다. 가장 스펙터클한 장면인 헬기신은 실제 헬기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하고 적절한 무대 활용을 통해 긴박감 넘치게 만들어냈다. 작품 전체의 짜임새는 2006년 초연보다 촘촘해졌다는 평가를 할 만하다.
‘미스 사이공’은 오페라 ‘나비부인’과 동일한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다. 베트남 처녀 킴은 미군 병사 크리스와 짧은 사랑을 나누고 둘은 함께 미국에 가기로 하지만 킴은 홀로 남겨진다. 크리스의 아이를 혼자 키우던 킴은 크리스와 다시 만나게 되지만 크리스에겐 부인 앨렌이 있다. 킴은 아들 탬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이 작품의 울림이 큰 것은 배우들의 좋은 연기 덕분이다. 특히 국내 초연에 이어 다시 킴 역을 맡은 김보경은 한층 노련해졌다. 첫 등장에서 그는 순수하고 가녀린 소녀의 목소리로 출발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김보경은 크리스와의 짧은 사랑과 이별, 정혼자 투이의 죽음 등 고난을 겪은 킴의 슬픔과 분노를 잘 담아내 객석에 전한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킴 주변에 있는 엔지니어 역의 김성기는 밑바닥 인생을 벗어나려는 인물의 처절함을 잘 그리면서도 간간히 극을 환기시키는 코믹연기로 눈길을 끈다. 그는 2006년 공연 당시 같은 배역에 뽑혔으나 공연 1주일을 앞두고 고혈압으로 입원해 무대에서 서지 못했던 아픔이 있었다.
상대역 크리스를 맡은 마이클 리는 김보경과 좋은 호흡을 보여주고 노래 실력도 좋다. 하지만 여전히 어색한 한국어 발음 때문에 몰입을 방해받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가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공연을 보면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극 후반부에 엔지니어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장면은 불필요하게 긴 느낌이다. 진짜 캐딜락까지 무대에 등장시키면서 공을 들인 장면이고 그 자체로는 훌륭한 볼거리다. 하지만 비극적 결말을 향해 달려가다가 난데없이 화려한 쇼가 오랜 시간 계속돼 극적 긴장감이 흩어진다. 5월 14일부터 9월 12일까지 충무아트홀(02-535-7396).
김준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