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상 특화거리’에 노점상이 없다… 종로서 창경궁로로 이전한 노점상 ‘개점휴업’

입력 2010-05-02 18:17


2일 오후 2시쯤 서울 혜화동 창경궁로(종로4가에서 원남동 사거리 구간) 노점상 특화거리. 일주일 중 가장 활기가 넘쳐야 할 휴일이지만 이곳을 오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생기를 잃은 거리에는 녹색 청색 방수 천을 덮은 주인 없는 손수레들만 길게 늘어서 있었다. 특화거리를 알리는 표지판은 보이지도 않았다.

150개에 달하는 노점상 가운데 장사를 개시한 사람은 서른 명 남짓에 불과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지친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던 김정순(가명·72) 할머니가 깊은 시름을 내뱉었다.

“이 장사를 한 지 18년째야. 그런데 지금처럼 힘든 적이 없었어. 종로통에 있을 땐 한 달에 150만원 정도는 거뜬히 벌었는데 지금은 10만원이나 버나 몰라. 어제는 겨우 1000원짜리 한 점 팔았다니까. 딸은 자궁수술해서 누워 있고 방세는 세 달이나 밀려서 주인이 자꾸 나가라고 하는데….”

김 할머니 근처에서 커피와 차를 파는 박모(68)씨가 거들었다. “서울시에서 이곳으로 자리를 옮기면 장사가 잘되게 이것저것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말을 믿은 우리가 바보지. 옆에서 모자를 팔던 친구는 며칠째 하나도 못 팔아서 이젠 아예 나오지도 않아.”

근처 노점상들도 하나 둘 찾아와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분통을 터뜨렸다. 자신들을 골목으로 쫓아낸 뒤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서울시에 대한 불만이었다. 1시간 넘도록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손님은 한 명도 찾아오지 않았다.

서울시는 종로를 ‘걷고 싶은 거리’로 만들기 위해 지난해 10월 종로4가 대로변과 세운상가 주변, 종묘 앞 등에 있던 150여개 노점상을 창경궁로로 이전시키고 이를 ‘노점상 특화거리’로 명명했다.

그러나 이곳으로 옮긴 노점상들은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6개월여 만에 그 수가 20%로 줄었다.

주중에는 문을 연 노점상이 10곳도 채 안되는 날이 많다. 그나마 장사를 나온 상인들도 손님이 없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인 지 오래다.

노점상가의 침체는 예상된 것이었다. 열악한 접근성 때문이다. 이곳으로 가려면 종로3가역과 버스 정류장에서 15분 이상을 걸어야 한다. 그나마 대로변 안쪽 골목에 위치해 있어 큰길 쪽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이 없으면 장사를 할 수가 없다.

서울시는 특화거리에 편의시설을 확충하고 관광코스를 개발한 뒤 대대적인 홍보를 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홍보를 담당한 종로구는 예산도 제대로 책정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노점상 이전 때 전단을 돌렸던 것이 홍보의 전부다.

생계가 막막해진 상인들은 가격을 낮추며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돋보기 가격은 5000원에서 3000원으로, 토스트는 1200원에서 1000원으로 내렸다. 그러나 사실상 파리를 날리고 있다. 벨트를 파는 한모(72)씨는 6개월 전에 사뒀던 물건을 다 팔지 못했고 도넛을 파는 장모(51)씨는 5개월 동안 빚이 1000만원이나 늘었다.

살길을 찾아 거리를 떠나는 노점상들도 생겼다. 그러자 종로구는 이들에게 “장사를 계속하지 않으면 손수레를 수거하겠다”고 경고장을 보냈다. 노점상 규격화로 300만원짜리 새 손수레를 사야 했던 노점상들에게 100만원을 지원해줬다는 이유에서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원래 단속 대상이던 노점상을 양성화하고 영업환경을 조성해 준 것이기 때문에 당분간 적극적인 지원은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전웅빈 이용상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