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지표는 봄… 고용시장은 한겨울

입력 2010-05-02 18:38


친정집에서 얻어온 반찬을 식탁 위에 내놓는 손이 가늘게 떨렸다. “경제는 살아난다는데 왜 내 생활은 이리도 힘든지….”

A씨(49)는 5년 전 남편과 헤어질 때만 해도 남겨진 두 딸을 내 손으로 키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간 모아뒀던 돈이 바닥났다. 생계를 위해 직장을 갖기로 마음먹었다. 돌이켜보면 지난해 6월 정부의 ‘희망근로사업’에 참가해 하루 4∼5시간을 일하며 매달 70만원 정도를 받을 때가 그나마 행복했다. 그것도 잠시뿐. 또다시 실업자로 전락하는 데는 채 6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올해 4월 다시 시작하는 희망근로의 기회를 엿봤지만 행운은 두 번 찾아오지 않았다. 빌딩 청소나 홀서빙 등을 전전하기도 했지만 시간당 4000원으론 두 아이를 키우는 데 역부족이었다. 결국 구청의 도움을 받아 정부의 구인·구직 사이트 ‘워크넷(work-net)’에 이력서를 올렸지만 아직까지 연락이 오는 곳은 없다.

A씨는 지난 29일 서울 장교동 종합고용지원센터를 찾았다.

“최종학력이 고졸이시고 경력도 없으신데 희망연봉을 3000만원으로, 지역은 성북구로만 해두셨네요.” 상담원은 겉돌고 있는 A씨의 구직활동의 문제점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의 조언으로 희망연봉은 1200만원, 지역은 ‘전국’으로 수정됐다.

A씨가 떠난 센터엔 60∼70대 노인 20여명만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담소를 즐기고 있었다. 구인·구직과 직업훈련 프로그램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 100여평 남짓의 2층 역시 썰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실질적으로 일자리를 찾아주는 구인·구직 상담이나 직업훈련 프로그램 상담을 찾는 구직자는 거의 없었다.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이 7.8%에 달하는 등 최근 경제지표가 크게 호전되고 있으나 고용지표는 여전히 답보상태에 있다. 정부는 올해 일자리 창출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가고용전략회의를 신설하는 등 야심 차게 각종 대책을 내놨다. 구인·구직자 연결시스템인 워크넷을 통한 중소기업 일자리를 3만개에서 10만개로 확대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정부는 현재 워크넷에서 구축 중인 대졸·전문계고 졸업자 구직 데이터베이스(DB)를 취업애로계층까지 확대해 전산화하고 있다. 취업애로계층이 워크넷을 통해 구인을 희망한 중소기업에 취직할 경우 1년간 취업장려수당까지 주고 있다. 일단 워크넷의 활용도는 전보다 높아졌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워크넷을 통한 취업자 수는 66만9535명이었고, 올해는 당초 예상한 증가율 10%보다 더 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난해 취업자의 3분의 1(22만4473명)이 20∼29세였다. 인터넷을 잘 다룰 줄 모르는 주부나 60대 이상 노인들이 워크넷에 접근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워크넷을 통한 청년층 일자리 알선도 구인 기업이 제한적이다. 대기업은 거의 없고 중소기업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전문대학을 졸업한 J씨(24)는 “구직을 위해 워크넷을 찾았으나 등록된 기업의 일자리 질이 낮을 뿐더러 이력서를 올렸어도 먼저 연락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아쉬워하며 발길을 돌렸다. 노동부 관계자는 2일 “대기업의 경우엔 자체 채용을 통한 경우가 많은데다 워크넷이 민간사이트보다는 정보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며 “이 같은 어려움 때문에 방문자 수가 하루 30만명을 넘어서고 있지만 취업까지 이어지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고용센터에서는 졸업을 한 뒤 6개월이 지나야 하고 29세 이하만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어 구직 기회마저 갖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고용센터를 찾은 대학원생 C씨(29)는 여러 상담원과 상담을 했지만 학교를 그만두고 홀로 구직활동을 하다가 그래도 직장을 구하지 못했을 경우 6개월 후에나 센터를 다시 찾아달라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