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목회자의 꿈은 아픔 뒤 찾아온 희망… 55살에 감신대 1학년 원영호 사모의 사연
입력 2010-05-02 19:12
강의실을 빠져나오는 젊은 대학생들 틈으로 걸음이 느린 중년 여성이 보였다. 학생들이 그를 보고 “이모님” “사모님”이라 부르며 인사를 건넸다. 충북 청원군 푸른감리교회 김병진 목사의 아내 원영호 사모. 55세의 나이로 감리교신학대학교 10학번이 된 그를 지난달 28일 서울 냉천동 감신대에서 만났다. 아들을 잃은 슬픔을 가슴에 묻고 만학의 길을 선택하기까지 사연을 들었다.
2003년 12월 26일은 몹시 추운 날이었다. 충북대 1학년인 아들 요한군은 겨울방학이라 집에 내려와 있었다. 김 목사와 요한군은 그날 오랫동안 알고 지낸 어느 목사의 부탁으로 교회 보수공사를 도와주러 갔다. 그런데 점심 무렵 김 목사가 끼니를 때울 우동을 사러 갔다 오니 아들은 보이지 않고, 부자가 작업하던 곳은 흙더미로 덮여 있었다. 요한군은 그 속에서 날씨보다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됐다. 원 사모는 뒤늦게 병원 영안실에 눕혀 있는 아들을 보고 숨이 막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요한군 시신은 모교 의과대에 기증됐다. 그리고 2년쯤 뒤 요한군의 시신을 화장했다는 통보가 가족들에게 왔다.
7년 전 일이지만 그때의 아픔은 전혀 풍화되지 않은 듯했다. 원 사모는 어렵게 아들의 얘기를 이어가며 붉어진 눈으로 한참 창밖을 바라보곤 했다.
“아들이 죽고 난 뒤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이 원래하던 사업이 망하고, 저는 그 빚을 갚느라 8년간 호떡 장사를 하면서 제대로 돌봐주지도 못한 아들인데…. 마음속이 온통 증오와 분노, 상실감으로 가득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저 같이 부족한 종에게 어찌 이런 감당하지 못할 시련을 주십니까’ 하고 하나님도 원망했습니다.”
고통의 나날이 계속될 줄 알았던 어느 날, 원 사모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귓가가 아니고 마음 깊은 곳에서 탄식처럼 들려왔다고 한다.
“네 아들의 육신보다 나를 조금만 더 사랑할 수는 없겠니?”
그 말은 희망이 됐고, 그를 돌아보게 했다. 이후 슬픔이 몰려올 때면 원 사모는 “하나님, 사랑해요”를 되뇌며 힘을 냈다.
원 사모는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뭔가 몰두할 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아들이 못 끝낸 대학도 가고 싶었다. 2006년 봄 그는 대전에 있는 한 평생교육시설에 입학, 4년간 청원과 대전을 기차로 오가며 공부한 끝에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본 뒤 감신대에 지원, 합격했다.
원 사모는 현재 월∼목요일은 학교 기숙사에서 21세의 여학생과 함께 산다. 목요일 오후나 금요일 오전이면 교회로 내려가 주일 저녁까지 사모로 사역하고, 월요일 새벽 다시 상경한다. 남편 김 목사는 동네 이장으로, 원 사모는 부녀회장으로도 활동한다.
“남편과 지난해 결혼한 딸아이의 응원과 희생이 있었기에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부족한 사모를 둔 성도들에게도 미안하고, 마을 어르신들께도 죄송하고. 이분들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더욱 공부를 열심히 할 수밖에 없지요.”
원 사모는 목회자의 길을 꿈꾸고 있다. 누구보다 힘든 7년을 보내고 더 큰 꿈을 향한 출발선상에 선 것이다.
“저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다가 희망을 봤잖아요. 세상의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희망이라는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