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노석철] ‘의리의 사나이’ 김무성

입력 2010-05-02 18:03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김무성 의원을 조용히 불렀다. YS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분위기가 박근혜는 안될 것 같다. 이번 선거는 이명박이 된다”고 했다. 친박근혜계 좌장격이었던 김 의원에게 줄을 잘못 섰음을 걱정하는 얘기였다.

김 의원은 “제가 친박에서 나가면 배신자가 됩니다. 각하 수하가 어디 가서 배신자 소리 들으면 되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이에 YS는 “니가 친박에서 ‘넘버 1’이었냐. 몰랐다”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에게 무슨 얘기를 해도 안 통할 것이란 것을 직감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전후는 불분명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이명박 후보는 김 의원과 은밀히 만났다. 친박에서 친이로 ‘전향’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끈질긴 설득에도 김 의원은 흔들리지 않았다. 김 의원은 그때도 “배신자가 될 수는 없다”는 취지로 거절했다. 김 의원은 훗날 “당시 선거 분위기가 이 대통령 쪽으로 쏠리는 것을 알았지만, 배신을 할 수는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경선에서 박 전 대표에게 올인한 대가는 혹독했다. 이른바 ‘공천학살’ 대상으로 지목돼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하고 눈물까지 흘렸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누가 그런 결정을 내렸느냐”고 역정을 냈다는 게 친이계 의원들의 전언이다. 한때 칼을 겨눴지만, ‘적군의 맹장’으로 탐을 냈음직하다. 그런 탓인지 ‘김무성 원내대표’ 카드는 지난 총선 이후 늘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박 전 대표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결국 친박 좌장이란 ‘직함’도 회수당했고, 미아란 얘기도 들어야 했다.

그런 그가 여당 원내대표로 사실상 추대됐다. 박 전 대표는 달갑지는 않지만 그의 앞길을 막지는 않았다. 양쪽에서 버림받았던 그가 어떻게 여당 원내대표가 됐을까. 의리를 중시하는 그의 성품에다 상도동계의 ‘끈끈한 정’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청와대와 정부, 한나라당 내에는 상도동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인사들이 즐비하다. 원내대표 출마를 노리던 인사들은 “김무성이 나오면 양보하겠다”고 한결같이 얘기했다. 친박계 의원들 사이에서도 “김 의원이 소신 있는 정치인인 만큼 기본적인 의리는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는 암묵적 동의가 적지 않았다. 이를 두고 ‘김무성 원내대표’를 상도동계의 부활로 보는 시각마저 일부 있다. 그의 정치적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노석철 차장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