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교과서에서 글을 빼달라는 소설가
입력 2010-05-02 17:48
작가 김영하씨가 문학작품이 교과서에 실리는 과정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김씨는 자신의 산문 ‘상상은 짬뽕이다’ 일부가 중학교 1학년 2학기 검정교과서에 실린 사실을 출판사에서 통보받은 뒤 ‘교과서에 실리지 않을 권리는 없는가’라는 글을 올려 현행 제도의 모순점을 지적했다.
그가 문제로 삼은 법은 “학교교육 목적에 필요한 교과용 도서에는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 작품을 실을 수 있다”는 저작권법 25조다. 그는 이 법을 근거로 교과서 편찬자들이 어떤 텍스트든 마음대로 사용해도 괜찮은지, 국가는 개인의 저작물을 마음대로 징발, 편집, 수정할 수 있는지, 영리기업이 남의 저작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지 묻고 있다.
작가의 문제 제기는 도발적이면서도 참신하다. 많은 사람이 교과서에 글이 수록됐다는 사실 자체를 영광으로 여기는 마당에 수록 절차와 정당성에 물음표를 던진 것이다. 여기서 교과서라는 공공재와 작가의 인격권이 충돌하고 국가가 추구하는 공익과 개인이 지향하는 사익이 대결한다.
교과서는 당대의 문화적 자산이 총집결하는 곳이다. 누구든 후손을 가르치는 일에는 최고의 것을 내놓아야 할 의무가 있다. 여기서 개인적 선택을 허용하면 최고의 교과서를 편찬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김영하씨는 교육에 동원되는 문학을 우려했지만 작가 자신도 많은 선배들의 글이 실린 교과서를 통해 문학을 배우지 않았던가.
더욱이 교과서는 그 자체로 완전하지 않은 매체이다. 그럼에도 작가의 글에 대해 순결주의에 가까운 완전성을 고집할 경우 이기주의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변형의 정도가 심해 명예를 훼손하는 정도가 아니면 허용해야 한다. 글은 한번 공표되면 공공적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다만 교과서가 아닌 참고서와 자습서를 만들면서도 저작자의 이용허락을 받지 않는 잘못은 고쳐져야 한다. 교과서 편찬자 또한 검인정의 권위에 기대 손쉽게 저작물을 다루기보다는 작품의 취지를 살리고 저자의 인격권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고의 교과서를 편찬하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