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옥선희] 사진을 고르며
입력 2010-05-02 17:48
“보내주신 사진이 증명사진처럼 딱딱하고 계절에도 어울리지 않으니, 자연스럽고 밝고 계절을 감안한 사진을 다시 보내주세요.”
신문사로부터 전화를 받고, 가슴이 철렁했다. 에고, 고르고 골라 보낸 건데 그냥 쓰면 안 될까, 새로 사진을 찍어야 하나, 사진 찍기 정말 싫은데, 누구한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나….
새 칼럼에 실릴 얼굴 사진을 다시 고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왜 나는 잘 웃다가도 카메라만 들이대면 입을 옹다물고 미간을 찌푸리는 걸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행복한 순간을 기록하는 것인데 “하나 둘 셋” 소리를 듣는 순간 자동으로 얼굴 근육이 굳어지고 눈이 감기니, 참.
거울을 보며 “그리 못생긴 얼굴이 아닌데…” 스스로 위안할 때도 많고, “살이 좀 빠졌네.” “인상이 좋으시네요.” 소리도 더러 듣는데, 왜 사진 속의 나는 날씬하지도 예쁘지도 않지?
환하게 웃고 있는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 뚱해 있는 나를 보며, 미스 포토제닉이 될 방법을 궁리해 봤다.
턱 선이 두드러지지 않도록 고개를 살짝 숙여야겠어. 앞머리 내리니 좀 어려보이는 것 같고. 단체 사진 찍을 땐 반드시 뒤에 서서 얼굴이 작아보이도록 하고, 발돋움해서 키는 커보이도록 해야지. 블로그에 자기 사진 올리며 ‘뽀샵’ 하는 이들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지난 1년의 사진을 꼼꼼히 들여다보니 외모 변화 못지않게 내게 일어난 일들, 나의 내면도 읽힌다. 마이클 잭슨 사망 소식 듣고 한 달여를 울고 난 후에 찍은 거구나. 30여년 만에 은사님을 만나 뵐 때의 두근거림이 담겨 있네, 등등.
못생긴 불평꾼이라고 사진 속 나를 야단쳤던 나는 앞으론 사진을 많이 찍어야겠어, 생각을 바꾸었다. 영혼이 빠져 나간다며 사진 찍기를 거부하는 원시인들도 있다지만, 사진 속에는 당시 나의 고민과 기쁨의 일단이 묻어나지 않는가.
이래서 요즘 사람들이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못하는가보다. 디지털 카메라가 나오고, 사진작가 작품이 비싸게 팔리는 이유를 알겠네.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싶었다.
행사 많은 계절의 여왕 5월. 풍경도 남의 얼굴도 아닌 내 얼굴 사진을 많이 남기고 싶다. 한데 “제가 자연스럽게 행동할 때 찍어주세요”라는 부탁을 들어 줄 사람을 어떻게 찾지? 내가 원하는 배경 속에 나를 앉히고 셔터를 눌러줄 만큼, 미적 감각 뛰어난 이들이 많을까?
그러고 보니 사진 속의 내가 미운 이유는 찍어주는 이들이 불성실하고 미의식이 없어서였구나, 새로운 변명거리도 만들어낸다.
물론 나는 안다. 내 외면의 변화 모두 내게서 기인한다는 걸. 이의 각성이 두려워 애꿎은 사진 타령을 했음을. 내가 원하는 표정과 구도, 마음까지 알아서 찍어주는 꿈의 셀프 카메라가 개발되면 좋겠다.
옥선희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