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⑬ 남대문은 잊어주세요

입력 2010-05-02 17:37


48년만에 바로잡는 문화재 이름 기왕이면 사연담아 더 친숙하게

역사적 고증과 흥미로운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문화재의 대중화를 가로 막는 요인 중 하나는 뜻을 알 수 없는 명칭과 용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도동서원강당사당부장원’(보물 350호)을 보시죠. 이름만 듣고는 도대체 어떤 문화재인지 쉽사리 떠오르지도 않고 어디에서 끊어 읽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지요. 어려운 한자인데다 띄어쓰기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직감으로 ‘도동서원’은 도동에 있는 서원(書院)이라는 것만 추측할 수 있을 따름이죠. 이를 ‘달성 도동서원 강당 사당 및 담장’으로 고쳐 쓰면 어떻습니까. 경북 달성에 있는 도동서원의 강당과 사당, 그리고 담장을 뜻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구체적인 지명을 내세우고 한자어를 띄어 쓰면서 우리말로 고쳤을 뿐인데도 한결 이해하기가 쉬워집니다.

‘도산서원상덕사부정문급사주토병’(보물 211호)은 또 어떻습니까. 도산서원까지는 알겠는데 나머지는 무슨 뜻인지 알쏭달쏭할 뿐입니다. ‘안동 도산서원 상덕사 및 정문’으로 바꾸니 한결 이해하기가 쉬울 겁니다. 문화재청은 최근 국가지정문화재 중 국보·보물에 해당하는 목조문화재 151건의 명칭을 48년 만에 전면 개정했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남대문과 동대문처럼 원래 이름에 덧붙여 썼던 별명은 지정명칭에서 빼고 안내문에만 넣도록 했다는 사실입니다. 국보 1호인 ‘서울숭례문(남대문)’은 ‘서울 숭례문’이 되고 보물 1호인 ‘서울흥인지문(동대문)’은 ‘서울 흥인지문’이 되는 것이죠. 일제강점기에 동서남북 방향에 따라 불리던 동대문 남대문 등 이름이 공식적으로 사라지게 된 셈입니다.

‘동동동 동대문을 닫아라. 남남남 남대문을 열어라’하고 놀았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생각하면 아쉬움도 없지 않지만 문화재 본래의 이름을 되찾는 일이니 마다할 이유는 없을 겁니다. 다만 예의를 숭상한다는 의미의 숭례문(崇禮門)과 인의를 흥하게 한다는 뜻의 흥인지문(興仁之門)이 일반인들에게 좀더 친숙하게 다가가도록 명칭에 대한 스토리텔링 개발도 필요하겠지요.

기존에 논란과 민원의 대상이 됐던 명칭도 이번에 바꾸기로 했다는군요. ‘서울문묘’(보물 141호)는 ‘서울 문묘 및 성균관’으로, ‘강릉객사문’(국보 제51호)은 ‘강릉 임영관 삼문’으로, ‘여수진남관’(국보 304호)은 ‘여수 전라좌수영 진남관’으로, ‘통영세병관’(국보 305호)은 ‘통영 삼도수군 통제영 세병관’으로 각각 개정됐다고 합니다.

‘돈화문’(보물 383호)은 ‘서울 창덕궁 돈화문’으로, ‘관덕정’(보물 322호)은 ‘제주 관덕정’ 등 문화재가 위치한 지역을 분명히 한 경우도 있습니다. 문화재 이름을 바꾸는 작업은 각 지방자치단체와 소유자의 의견을 듣고 전문가의 자문 등을 거쳐 1년 6개월 동안 준비한 것이랍니다. 이를 바탕으로 석조문화재 550여건의 명칭 변경도 추진할 예정이랍니다.

이왕 바꾸기로 했다면 문화재위원은 물론이고 국어학자와 문화예술인 등 각계의 의견을 토대로 남녀노소와 외국인 모두가 알아보기 쉽게 개선됐으면 좋겠습니다.

문화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