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사면서도 계산기 꺼내…日관광객들 따라가보니

입력 2010-04-30 22:45


“골든위크 특수요? ‘빛 좋은 개살구’예요.”

일본 최대 연휴기간인 골든위크(4월 29일∼5월 5일)를 앞두고 반짝 특수를 기대했던 서울 남대문시장과 명동 일대 상인들은 시큰둥했다. 일본 관광객들은 김 하나를 사면서도 계산기를 두드리며 꼼꼼히 가격을 비교했고 한참을 망설인 뒤에도 쉽게 지갑을 열지 않았다.

골든위크 둘째 날인 30일 오전 서울 남대문시장. 일본 관광객들로 북적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거리는 한산했다. 상점마다 상인 2∼3명이 나와 “이랏샤이마세!(어서 오세요)” “환잉꽝린!(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이라고 소리치며 호객 행위에 나섰지만 대부분 그냥 지나쳤다. 간간이 보이는 일본 관광객들은 삼삼오오 모여 구경만 할 뿐 실제 구매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남대문시장에서 30년째 인삼과 김 등을 판매하고 있는 김영춘(63)씨는 “골든위크라고 하는데 점심시간이 다 되도록 아직 개시도 못했다”면서 “그나마 오는 손님들은 구경만 할 뿐 실제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인근에서 ‘동경식품’을 운영하는 장기수(69)씨는 “주말에 관광객이 많이 오기를 바라고 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고 체념한 듯 말했다.

그나마 한류 스타를 내세운 화장품 로드숍은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다시 한국을 찾은 아야미(16)양 모녀는 29일 롯데호텔에서 하루 묵은 뒤 오전 면세점에 들렀다 남대문시장을 찾았다. 아야미양은 가수 비가 광고모델인 ‘네이처리퍼블릭’에서 마스크시트를 산 뒤 배우 이병헌이 광고하는 ‘미샤’를 지나 아이돌 그룹 SS501의 김현중 사진이 걸린 ‘토니모리’에 들러 아이섀도를 구입했다. 아야미양은 “좋아하는 연예인이 광고하는 제품이라 모아두고 싶다”고 말했다.

네이처리퍼블릭 장선미(50·여) 사장은 “일본인들은 여행이나 출장을 다녀오면 가족과 연인, 회사동료에게 작은 선물을 하는 ‘오미야게’ 전통이 있어 마스크시트나 비비크림 같은 제품이 잘 나간다”고 말했다.

인근 명동 분위기도 비슷했다. 환전소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신종 플루 때문에 관광객이 적었는데 올해는 무슨 이유인지 알 수가 없다”며 “골든위크라 해도 평일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평소 입장객의 20% 이상이 일본 관광객인 용산 ‘드래곤스파’ 관계자도 “골든위크를 맞아 일본 관광객이 평소보다 늘긴 했다”면서도 “예전에는 쇼핑백을 여러 개 싸들고 와 프런트에 맡기는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 오는 관광객들은 손이 가볍더라”고 말했다.

일본 관광객들이 씀씀이를 줄인 건 최근 엔화가치가 하락하면서 가격 경쟁력이 없어졌기 때문. 지난해 이맘때쯤 환율은 100엔당 1400원에 육박했지만 이날 환율은 1177원으로 15∼20%가량 떨어졌다.

상인들은 쇼핑계의 ‘큰손’으로 자리잡은 중국 관광객에게 기대를 거는 모습이었다. 중국 노동절 연휴(1∼3일)를 전후해 경기회복으로 인한 여행 수요 증가로 5만4000여명이 방한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뷰티플렉스 명동점 관계자는 “일본 관광객들은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서인지 기획 상품이나 덤을 얹어주는 제품을 선호하는 반면 중국 관광객들은 씀씀이가 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대량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인천공항공사 집계 결과 29일과 30일 일본발 한국행 여객기 탑승객은 각각 9704명, 5047명으로 전주보다 30%,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9일과 30일 중국발 한국행 비행기 탑승객은 각각 1만5492명과 1만1345명으로 전주보다 15%,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 증가했다.

권지혜 김현길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