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와 싸움도 포기 안해요”… 사회복지협의회 새생명 희망나눔 제주 캠프

입력 2010-04-30 22:37


“얼마 안 남았어. 뒤꿈치부터 디디면 힘들지 않아.”

29일 제주도 한라산 어승생오름. 한 무리의 어린이들이 서로를 격려하며 한 줄로 등산로를 오르고 있었다. 담도폐쇄증, 백혈병, 골육종 등 희귀질환 치료를 받고 있는 소아암 환아들이었다.

어린이들은 등반 내내 숨가빠했다. 걷다 쉬기를 반복하는 사이 뒤따르던 등산객들이 앞질러 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아무도 포기하지 않았다.

기어코 해발 1169m 정상에 오른 어린이들은 노란 풍선에 소원을 적어 날렸다. 멀리 한라산 정상이 보이는 파란 하늘로 풍선 30개가 아름답게 날아갔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풍선에 건강을 기원하는 소원을 적었다. “어서 나아서 부모님과 또 여행을 오게 해 주세요.” “얼른 나아서 매력적인 뮤지컬 배우가 될래요.”

한국사회복지협의회는 에쓰오일의 후원으로 28∼30일 제주도에서 2박3일 동안 ‘새생명 희망나눔 캠프’를 열었다. 협의회는 회복기 환아 가족 중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등 저소득층을 캠프에 초대했다. 전국 각지에서 소아암 환자 21명과 가족 63명이 선발됐다.

캠프 주제는 ‘함께 걷는 길’이었다. 환아들을 인솔한 사회복지사 유진희(38·여)씨는 “여행을 통해 가족끼리 정을 다지고 자신감을 찾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제주도에 도착한 28일에는 비가 내렸지만 29, 30일은 화창했다. 28일에는 여미지식물원에서 각종 열대식물을 관람했고 중문해수욕장에서 탁 트인 바다를 감상했다. 29일에는 한라산 주변의 오름과 미로공원, 만장굴에 다녀왔다.

바람이 많아 어린이들은 항상 마스크를 쓰고 옷을 껴입어야 했지만 마냥 즐거워했다. 버스로 이동할 때에도 제주도의 풍경을 한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창문 밖으로 향한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산과 바다를 뛰어다니고 기념 촬영에 여념이 없는 어린이들의 모습에 부모들은 “벌써 아이가 다 나은 것 같다”며 감격스러워했다.

협의회는 “감기 기운이 있거나 몸이 좋지 않으면 숙소에 남아 있거나 버스에서 내리지 않아도 좋다”고 여행 내내 안내방송을 했다. 하지만 여행 코스를 빼먹은 어린이는 한 명도 없었다. 어린이들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캠프 보고서를 내야 한다며 메모에도 열심이었다. 가족들은 30일 올레길 탐방을 끝으로 짧은 여행을 마쳤다. 병 치료 때문에 가족여행은 엄두를 못 냈던 아이들 부모들도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급성백혈병 환아 이재혁(13)군 어머니는 “백혈병을 치료한 4년, 합병증을 치료한 1년 등 5년 동안 여행을 떠나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다”며 고마워했다. 골육종을 치료하는 김영인(10)군 어머니는 “오랜만에 가족끼리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이 정말 소중하다”며 “영인이가 건강한 아이처럼 바닷가를 씩씩하게 다녔고, 하룻밤이 갈 때마다 아쉬워했다”고 말했다.

제주=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