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설교] 교회에 아이들이 없다면…
입력 2010-04-30 17:21
누가복음 18장 15∼16절
선교지 방문차 네팔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 눈 덮인 히말라야 중턱 오지인 가오리상카까지 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했습니다. 포장도로도 아니고 중앙차선은 말할 것도 없고, 자동차에는 백미러도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도로난간의 여유는 눈으로 보기에 거의 없을 정도였습니다. 길 아래는 수백 미터의 낭떠러지에 높은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길이 굽이쳐 흐릅니다. 덜컹거리는 자동차를 타고 하루 종일 걸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차가 혹시나 잘못되지는 않을까하는 조바심을 억제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차를 타고 가는 도중 군데군데에서 어린 아이들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망치 하나를 들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강가에서 주워온 단단한 차돌을 깨는 것이었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학교도 뒤로 한 채 돌을 깨서 팔아야만 하루 끼니를 이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옷은 해어졌고 양말은 신지 않아 꼬질꼬질한 발가락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그야말로 아직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부터 고만고만한 또래의 남녀 아이들이 돌의 무게보다도 더 무거운 짐을 지고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와 나라의 미래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나라가 잘 되려면 아이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건강하게 잘 자라느냐에 따라 나라의 미래가 있습니다. 교회를 볼 때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교회가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아이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는 것 같지만 그 아이들이 자라나서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어디에 투자를 해야 하는지 답은 쉽게 나옵니다. 아이들은 금방 자랍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10년이면 청년이 되고, 조금 더 지나면 곧 장년이 됩니다. 그 아이들은 교회의 미래이며 신앙의 계승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어른들은 아이들을 사회의 정식회원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날 때에도 아이들은 숫자에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제자들마저도 아이들이 예수님께 오는 것을 보고 꾸짖었습니다. 아이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마음에 분히 여겨 말씀하시기를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 16절에는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이들을 사랑하셨고 그들을 통해 미래를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교회에 아이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저출산으로 인해 교회 안에 아이들이 점점 줄어드는 동시에 공부에 지친 아이들이 교회를 멀리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미래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져옵니다.
교회의 미래는 아이들에게 있습니다. 교회가 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잊어버리면 당장은 돌을 깨서 생계를 유지할지 모르나 교회의 미래는 어두울 뿐입니다. 건물만 있고 사람은 없는 교회 이야기는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닐 것입니다. 어른들에게 집중된 관심을 조금만 더 아이들에게 쏟으면 교회의 미래는 밝을 것입니다. 교회에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성경 읽는 소리, 찬양소리가 끊이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가 사는 길이며 아이들을 품에 안으시고 사랑해주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실천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황종상 수원새동산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