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의 맛있는 수다’… 삐뚤빼뚤 ‘아빠표 롤’ 가족에겐 최고 선물

입력 2010-04-30 22:59


어둠이 내려앉은 교실에 강사 목소리만 들린다. 수강생들은 농담을 해도 웃지 않는다. 재수학원 교실풍경이 아니다. 지난 27일 서울 필동 샘표식품 지미원에서 열린 요리교실 모습이다. ‘남자들의 맛있는 수다’에 참가한 남성14명은 앞치마를 두른 채 요리 선생님 말씀을 놓칠세라 귀를 쫑긋 세운 채 부지런히 메모했다.

이날 강의를 맡은 고효정씨는 “눈빛이 살아 있어 어머니들보다 잘할 것 같다”며 차근차근 설명하며 시범을 보였다. ‘요리’라는 새로운 세상에서 이들이 도전하는 것은 연어캘리포니아롤과 새우튀김롤, 그리고 미소된장국. 선생님이 척척 말아 내는 롤을 보면서 걱정스러운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시범이 끝난 뒤 질문이 쏟아졌다. 계량스푼이 없으면 어떻게 양을 재죠? 오이는 껍질을 깎나요? 다시마는 왜 넣죠?….

3명씩 짝을 지어 실전에 나선 이들은 소곤소곤, 하하호호…. 음식재료를 챙기는 이들의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어느새 나긋나긋해져 있었다.

어린이날을 앞둔 때여서인지 아이들에게 아버지 솜씨를 보여 주기 위해 배우러 왔다는 이들이 단연 많았다. 안기주(44·회사원)씨는 “예은(12·여·초교 6)이랑 성찬(10·남·초교 4)이랑 나들이 갈 때 도시락을 싸기 위해서 배우러 왔다”고 했다. 하만진(42·회사원)씨도 “아버지가 직접 만든 도시락이 동훈(11·남·초교 5)이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활짝 웃을 아이들을 생각하며 손을 재게 놀리는 이들 사이에서 김한림(43·통역사)씨는 어머니 생각이 난다고 털어놨다. “어머니께서 어려서부터 ‘너희들이 컸을 때는 남자도 요리 바느질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미국으로 유학가 그곳에서 직장생활하다 작년에 들어왔는데 정말 그런 세상이 된 것 같네요.”

이날 참석자 중 최연장자인 박종만(60·회사원)씨도 “우리 때는 정말 남자들은 부엌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은퇴한 뒤를 위해서 배운다”는 그는 “남성들만을 위한 특강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했다. 장극수(44·회사원)씨도 “요리 배우고 싶었는데 기회가 별로 없었다”면서 주말에 가족들을 위해 멋지게 한상 차려주겠다고 별렀다. 장모님께 어버이날 선물로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신청했다는 기특한 사위 김정수(38·회사원)씨, 3월에 결혼해 곧 있을 집들이 때 아내 일손을 덜어주기 위해 배운다는 새신랑 신재웅(33·회사원)씨 등 모두 가족사랑이 넘쳤다.

밥을 미리 지어 놓았고, 새우도 튀겨놓은 덕에 요리는 30여분 만에 끝났다. 삐뚤빼뚤한 캘리포니아롤, 옆구리가 살짝 뜯어진 새우튀김롤, 두부 크기가 들쭉날쭉한 미소된장국. 모양새는 선생님의 그것보다 못했지만 직접 만든 롤을 한입 베어 문 아빠 요리사들은 싱글벙글. 모두들 맛있게 먹는데 김건훈(41·회사원)씨는 자기 몫을 슬그머니 호일에 샀다. “아내가 임신 중인데 롤을 먹고 싶다고 해서 오늘 배우러 왔어요. 아내 갖다 주려고요.” 예전 같으면 팔불출 소리가 메아리쳤겠지만 이들이 누구인가. 아이들을 위해, 장모님을 위해 요리를 배우러 온 이들 아닌가. 아내에게 주기 위해 가져간다는 김씨의 말에 다른 이들 얼굴에 아쉬움이 살짝 비쳤다. “아, 나도 내 첫솜씨를 싸갖고 가서 아내와 아이들한테 줄 걸 그랬다”는 듯.

시식이 끝나고 설거지 시간. 우당탕탕. 그들은 다시 사나이로 돌아와 있었다. 목소리도 커졌다. “다음에 또 신청해야지.” “김형은 어떻게 할 거예요?” “박 선생님도 하실 거죠.” “그럼요. 그럼요.”

‘남자들의 맛있는 수다’는 매월 마지막 주 화요일 저녁 7시 시작한다. 참가신청은 샘표식품 홈페이지(www.SEMPIO.com)에서 할 수 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