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장편 소설 ‘빈집’ 출간한 김주영

입력 2010-04-30 23:02


“살벌한 관계로 변해가는 가족의 현실을 경고하다”

‘객주’ ‘천둥소리’ 등 역사성 짙은 장편들로 독자적인 문학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 김주영(71)이 오랜만에 새 장편소설 ‘빈집’(문학동네)을 내놨다. 2년 전 우화집 ‘달나라 여행’을 선보인 적은 있지만 장편으로는 2002년 ‘멸치’ 이후 8년만에 선보인 작품이다.

작가는 “지난 겨울 강원도 산골에 들어가 한 달 만에 썼다. 오랫동안 구상해 왔던 것이고 평소 살아가며 느낀 점을 소설화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랫만에 발표한 장편이지만 작가는 소설을 안 써도 늘 쓰고 있는 것 아닌가. 활자화만 안됐을 뿐이지 머리 속으로는 늘 작품을 쓰고 있는 게 작가다”고 덧붙였다.

신작은 ‘홍어’ ‘멸치’ 등 전작과 마찬가지로 가족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특유의 남성적 필치로 그려가는 가족상은 전작에 비해 판이하다. 이전 작품들은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는 전통적인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이번 소설에서는 일그러지고 비틀린 가족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이전에는 전통적인 가족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덜 모험적인 소설을 썼다. 조용하고 따뜻하고, 결말도 극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빈집’은 방향이 전혀 다르다. 가족들의 갈등 구조를 극대화해 역동적으로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냈다”고 말했다.

어진의 아버지 배용태는 있으나마나 한 가장이다. 노름판을 전전하느라 집을 비우기 일쑤다. 가끔 예고 없이 집에 들르지만 죽은 듯이 지내다 다시 떠나 버린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기다리며 헌신한다.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받은 경멸이나 모욕감을 쏟아내고, 남편의 관심을 끌기 위해 딸 어진이를 구박하고 매질한다. 행방이 묘연해진 아버지를 찾아 어머니가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어진이는 혼자 집을 지키는 일이 잦아진다. 거리를 나돌던 아버지는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장례를 치른 어머니는 빚쟁이들을 피해 또다시 집을 나간다.

빈집을 홀로 지키던 어진이는 중매로 결혼하지만 시집을 가서도 외롭기는 마찬가지다. 남편과 시어머니의 핍박과 무관심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선 어진이는 이복언니를 찾아가지만 세상사에 지친 언니마저 그의 곁을 떠난다. 어진이는 결국 다시 홀로 남겨진다. 소설엔 여인 2대의 운명이 모질게 새겨진다.

작가는 “아버지가 집을 버림으로써 가족들이 겪게 되는 고통을 이야기했다”며 “가족이란 무엇이고, 집이란 무엇인가를 추구했다”고 말했다. 표제 ‘빈집’은 오늘날의 가족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을 잘 대변하고 있다.

“오늘의 가족은 구성원들이 서로 사랑하고, 저녁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살아가는 전통적인 개념에서 한참 벗어나 있어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가족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제각각 놀고 있죠. 그런 현상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집이 있어도 집이 아닌 거죠.”

작가는 “가족이 살벌한 관계로 변해가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서 소설을 썼다”며 “내 자신은 물론 독자들에게 그런 현실을 경고하려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말했다.

김주영은 올해로 등단 40년을 맞았고, 칠순을 넘겼지만 창작에 대한 열의는 여전하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글쓰기의 숙명을 이렇게 토로했다.

“내 안에 터질 듯이 더부룩한 탐욕이 있다. 그것이 나를 천성적인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내 일생이 소멸될 때까지 이 탐욕과 껴안고 엎치락뒤치락하는 가늠은 계속될 것 같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