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46용사 영결식] 이상민 하사 어머니가 눈물로 차린 ‘마지막 밥상’
입력 2010-04-29 21:44
눈물로 차린 밥상이었다. 차디찬 서해에서 돌아온 막내아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위해 지은 따뜻한 쌀밥과 소고기 무국.
“김치라도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상민이가 무국 먹고 속이라도 뜨뜻하게 달랬으면 좋겠다.”
고 이상민 하사의 어머니 김병애(54)씨는 아들을 위한 마지막 밥상을 준비하느라 29일 오전 5시에 일어났다. 아들이 좋아하는 콩나물무침을 만들고 싶었지만 해군 제2함대사령부의 유가족 숙소 사정이 여의치 않아 못 한 게 마음에 걸렸다.
함께 밥상을 차린 다른 어머니들도 생전의 아들을 떠올리며 밥 짓는 내내 눈물을 쏟았다. 어머니들이 손수 차린 밥상은 2함대사 체육관에 마련된 분향소 영정 앞에 놓였다. 김씨가 밥을 지으러 간 사이 이 하사의 다른 가족들은 유골함이 운구차로 옮겨지는 것을 지켜봤다.
3녀 1남 중 막내인 이 하사는 효자였다. 입대 전 아르바이트를 해 마련한 300만원을 어머니의 디스크 수술비로 내놓았다. 입대 후에는 “어머니, 드시고 싶은 것 사 드세요”라며 첫 월급을 내밀었다.
밤새 잠을 설친 김씨는 아들을 위한 아침 준비를 끝내고서야 영결식장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둘째딸 순희(29)씨가 옆에 앉아 손을 꼭 잡았다. 그러나 위패가 지나가는 것을 보자 김씨는 “아이고, 당장이라도 (상민이가) 나올 것 같네”라며 장탄식을 쏟아냈다.
아버지 이병길(60)씨는 쉽사리 버스에 오르지 못했다. 그는 우황청심환을 꼭 쥔 채 숙소 앞에 힘없이 앉아 있었다. 다른 두 딸이 눈물을 훔치며 아버지를 부축했다. 이씨는 지난 25일 아들의 화장을 지켜보던 중 실신했었다.
10시 영결식장. 생존자인 김현래 중사가 추도사를 읽자 유가족들의 흐느낌은 대성통곡으로 변했다. 영정 앞에 화랑무공훈장이 수여됐지만 울음소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이 하사의 부모는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헌화를 한 뒤에도 영정 앞에서 좀처럼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10분 가까이 그 자리에 서서 오열했다.
1시간 만에 영결식이 끝나고 영정과 유골함을 실은 운구행렬이 군항 부두에 다다르자 대함경례, 기적취명과 함께 검은색, 흰색 풍선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어머니 김씨는 고개를 들고 말했다. “올라간다. 상민이가 하늘나라로 간다.”
다시 버스에 오른 이 하사의 가족은 운구행렬을 따랐다. 길가에 선 주민들이 국화꽃잎을 떼어 비처럼 뿌렸다. 어린 조카들은 “삼촌 왜 안 보여주느냐”고 칭얼댔다. 가족들은 부둥켜안고 다시 통곡했다.
운구행렬은 국립대전현충원으로 가는 길에 이 하사의 고향인 충남 공주를 거쳤다. 김씨는 마치 아들의 손을 잡고 잠시 고향땅을 밟기라도 한 것처럼 가만히 말했다. “참 다행이다. 공주에 들러서 잘됐다. 집에는 못 들러도 공주는 들러서 잘됐다.”
오후 3시 대전현충원에 도착한 가족들은 이 하사를 땅에 묻었다. 생존 장병인 김정원 하사가 전해준 은색 시계도 함께 묻었다. 김 하사는 전날 “상민이가 시계를 무척 좋아했는데 시계를 자주 잃어버리곤 했다. 상민이에게 꼭 전해 달라”며 자신이 차던 시계를 풀어 이 하사 어머니의 손에 쥐어줬었다.
평택=엄기영 김수현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