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46용사 영결식] 절망속 의연함 보인 가족들… 분노·절규속 고비마다 아름다운 양보 ‘온국민 감동’

입력 2010-04-29 18:48


지난달 26일 오후 9시22분 해군 천안함이 서해 백령도 해상에서 침몰했다. 승조원 104명 중 실종된 46명 가족의 안타까운 기다림이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침몰부터 29일 영결식까지 34일 동안 가족들은 슬픔과 절망 속에 때로는 격분했고, 때로는 의연하게 고통과 아픔을 견뎌냈다.

◇분노와 절규=가족의 분노는 사고 다음날인 27일 폭발했다. 사고 사실을 가족에게조차 알리지 않은 해군을 향해 분노를 쏟아냈다. 가족들은 충격 속에 몸을 가누지도 못하면서 해군의 처사를 질타했다. 한 유가족은 “내 자식이 근무 중 사고를 당한 걸 언론을 통해 알았다. 이게 말이 되느냐”며 절규했다.

이날 오후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최원일 함장 등 생존자와 가족의 첫 만남에서도 이들의 분개는 이어졌다. 사고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침몰 장소는 정확히 어디쯤인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지만 최 함장은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은 채 황급히 자리를 떠 가족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일부는 떠나는 최 함장을 가로막고 차를 부수기도 했다.

군의 어설픈 구조작업도 가족들의 화를 키웠다. 사고 이후 현장을 둘러보고 온 뒤 가족들은 “군이 구조작업을 원활히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실종자들이 모여 있을 것으로 추정된 함미를 빨리 찾지 못하고 구조 장비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은 군의 행태에 이들은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안타까움 속 발만 동동=더딘 구조작업 속에 가족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림뿐이었다. 한 가족은 “내 아들이 저렇게 차가운 바다에서 떨고 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너무나 속상하다”며 눈물을 훔쳤다. 사고 발생 후 생존 가능 시간으로 알려진 69시간 동안 이들은 발만 동동 굴렀다. 지난달 29일 오후 7시쯤 69시간을 넘어서자 이들의 절망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일부 가족은 “하늘도 무심하시지…”라고 되뇌었다. 사고 지점 유속이 매우 빠르고 악천후 때문에 잠수요원들이 물속에 들어갈 수조차 없던 날이 많았다. 게다가 함미가 뻘 속에 묻혀 잠수요원이 안으로 들어가기 어려웠던 것 등 여러 가지 악조건 때문에 가족들은 가슴을 칠 수밖에 없었다.

◇절망과 슬픔 가운데 보여준 의연함=절망과 슬픔 속에서 보여준 희생자 가족의 의연함은 온 국민에게 감동을 줬다. 지난달 30일 해군 특수전여단(UDT) 한주호 준위 순직과 지난 2일 98금양호 침몰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자 이들은 아름다운 결단을 내렸다. 실종자가족협의회 이정국 대표는 “우리 자식 살리자고 남의 자식 죽일 수는 없다”며 인명 구조작업을 인양작업으로 전환키로 결정했다.

이들의 의연함은 함미 인양을 앞두고 또 한번 발휘됐다. 가족들은 46명 중 사고 당시 함수와 함미의 절단면 부근에 있었던 장병은 사고 발생 즉시 산화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시신을 찾지 못할 경우 군 당국에 더 이상의 수색을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이들의 의연한 모습에 온 국민은 박수를 보냈다.

29일 영결식장에서도 가족들은 누구보다 강하고 담대했다. 이들은 “천안함 46용사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외롭지 않게 끝까지 지켜주신 국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우리는 해군 가족이고 여전히 대한민국 해군을 믿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조국현 기자 jo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