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변재운] 판사도 사람이다
입력 2010-04-29 18:18
“1심 판결이 마음에 안든다고 그렇게 들볶으면 사법부더러 어떻게 하라는 건지”
누가 지어낸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서울 모 법원에 C판사가 있었는데 택시운전사들 사이에 경계대상 1호였다고 한다. 자신의 어머니가 택시에 치여 숨진 데 한이 맺혀 인명사고 재판만 맡으면 항상 법정 최고형을 때린다는 것이다.
검사 출신 김두식 교수(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가 쓴 ‘불멸의 신성가족-대한민국 사법패밀리가 사는 법’(창비)은 우리 사법부가 불신 받는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다. 판사, 검사, 법조 출입기자, 소송 경험자 등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설득력이 있다. 책을 읽은 느낌은 결국 법조인들도 일반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지연과 학연에 더해 사법연수원 동기들 간의 끈끈한 유대, 법조선배 변호사에 대한 전관예우, 변호사로부터 사무실 회식비 등을 지원받는 소위 실비 수수 관행(지금은 없어졌다고 주장함) 등이 수사와 판결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많은 사람들이 법조인을 대단한 존재로 인식하지만 그들도 역시 비리와 유혹, 오류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들이었다. 특히 고생고생 소송을 해 본 사람들은 판검사들에 대해 적잖게 실망한다.
과도한 업무량과도 관련 있겠지만 판검사들이 일정한 틀을 미리 짜놓고 사건을 꿰맞추려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도 흥미롭다. 검사든 판사든 먼저 들은 이야기에 인식을 고정시키려 하고 그러다 보니 수사와 재판의 진행 과정에서 그런 인식을 뒷받침하는 이야기에 주로 귀를 기울이게 된다는 것이다. 독선 때문일 수도 있고 사건을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일 수도 있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판사의 이념적 편향성 문제도 그런 시각에서 보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사람은 어느 쪽에 관심이 많고 가치의 비중을 크게 두느냐에 따라 사안을 대하는 시각이 달라진다. 그 기준을 정해놓고 사람들을 진보와 보수로 분류한다면 판사들도 사람인 이상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시국선언 전교조 교사에 대해 판사마다 유무죄 판결이 다른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다만 신문들이 같은 사안을 놓고 이념적 편향성에 따라 해석과 시각을 달리하면서도 팩트(사실)를 왜곡하지는 않듯 판사들도 자신의 시각을 반영하되 법의 테두리 안에서 판결을 내리는 것일게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는 판사의 판단 오류나 이념적 편향성 등이 재판에 영향을 미쳤을 것에 대비해 3심 제도를 두고 있다. 사법시스템을 충분히 활용하고 최종심에서도 지면 승복하는 수밖에 없다. 공교롭게 3심의 재판부가 모두 특정 이념에 편향됐다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용훈 대법원장은 지난 23일 법의 날 기념사에서 “사법부 재판에 대한 건전한 비판과 감시 활동은 적극 장려되어야 하지만 최종적으로 확정되지 않는 하급심 판결에 대한 과도한 비판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당연한 이야기를 대법원장이 해야 하고 이것이 뉴스가 되는 현실이 오히려 이상하다. 사람들이 너무 조급한 것 같기도 하고 자기 주장이 지나치게 강한 것 같기도 하다. 진보적 판사의 판결을 보수집단에서 보면 좌편향으로 비쳐질 것이고, 반대로 진보집단에서는 보수적 판사의 판결이 우편향으로 보일 것이다. 어차피 재판에서 지는 쪽은 불만이 있기 마련이다. 판사들이 내 생각과 똑같고 내 마음에 쏙 드는 판결만 계속 내린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현실을 인식하고 수용해야 하는데, 1심 판결이 마음에 안 든다고 그렇게 들볶으면 사법부더러 어떻게 하란 말인가. 마치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상급심은 잘 처리해!”라고 경고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판사들에게 신격(神格)을 요구하지만 그들도 역시 사람이다. 과거엔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하며 조작으로 판명된 인혁당 사건 피의자들에게 무지막지하게 사형선고를 내린 게 그들이다. 지금은 그나마 집권 여당과 갈등구조를 빚을 정도로 독립성을 확보했다는 사실이 감읍할 따름이다. 머지않아 우리 검찰도 일본처럼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들이대는 검찰독립 시대가 오지 않을까 기대되는 대목이다.
변재운 논설위원 jwbyun@kmib.co.kr